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1917년에 쓰고 이듬해에 발표한 글에서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은 쉽게 말하자면, 남들이 보기에 별 거 아닌 차이를 증폭시켜서 자기 도취에 푹 빠져버려서는 대립, 갈등, 반목, 불화 등을 유발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바로 그러한 대립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소한 차이를 강조하는 바의 심리 구조를 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약간 손을 대서 프로이트를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각 개인을 ‘개인적 고립의 터부’에 의해 타인들과 분리하고 사람들 사이에 낯설음과 적대감의 감정이 형성되도록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면 다 똑같았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사소한 차이 때문인데, 이것으로부터 더 나아가면 ‘사소한 차이들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of minor differences)’이라고 하는 적대감을 도출해낼 수 있다.”

좀 더 나중에 프로이트는 사소한 차이라는 개념을 지리적으로 인접한 두 부족들 사이의 불화나 적대, 또는 심지어 같은 정치-사회적 단위 안에서 에스닉한 차이 등으로 인해 생기는 불화나 적대를 해명하는 분석 도구로 확장했다. ‘사소한 차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집단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테마인 자아(집단)와 타자(집단) 사이의 차별적 심리 구조를 해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많은 사람들은 안 의원의 탈당 사태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탈당이 안 의원의 책임만은 아니다. 문재인 대표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물론, 지금 나는 누구에게 더 책임이 많은가를 따지려 하거나 혹은 둘 다 책임이 있다는 식의 허망한 양비론을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위에서 말한 ‘사소한 차이’의 함정에 다시금 말려드는 것에 불과하다. 내 얘기는 이번 탈당 사태의 핵심이 그저 사소한 차이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대부분 사람의 눈에 사소한 차이로 보이는 것이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 그리고 두 사람 각각의 지지자들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야권의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는가 하는 것은 두 사람 및 그 지지자들에게는 아주 중대하고도 큰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이 느끼고 있는 바의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바로 그런 사소한 차이에 푹 빠져서 그들만의 정치적 나르시시즘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이래 지속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쇠락, 민주주의의 퇴락, 불안정 노동의 확산, 생태 환경의 파괴 등을 정치적으로 걱정하고 있다. 젊은이들 일자리는 없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고, 아이들을 키우거나 교육시키는 것은 늘 힘들고, 어른들은 일자리에서 일찍 쫓겨나서 할 일이 없고, 그래서 놀게 된 사람들은 치킨집을 시작했다가는 금방 폭삭 망하고, 늙어서는 병원비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꽉 막혀 있다.

안 의원의 탈당 사태를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벌어진 정치 상황이라고 본다면 이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문 대표나 안 의원 등이 앞으로는 그러한 ‘사소한 차이’에 더 이상 매몰되지 않은 채 바람직한 의미에서의 정치 경쟁을 벌여나가고, 또 적절한 수준과 형태의 연대와 협력을 반드시 제때에 하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사소한 차이’를 고집하고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다른 길은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선호하고 지지하고 열망하는 정당이나 후보 없이 다음 선거들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다면, 총선이나 대선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더 느리고 힘들기는 하지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가는 길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오히려 이 점에서 희망을 본다. 이미 한국은 반칙과 특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초보적 수준의 시민사회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더욱 더 발전된 토대 위에서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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