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오른손에 필기구를 쥐고서 오랜 동안 수많은 글을 써왔겠죠. 그는 내내 성실했던 자신의 오른손을 전혀 모르는 여자의 장바구니에 몰래 넣어주어 달아나게 하고 싶은가 봅니다. 자신이 명하는 의무가 닿지 않는 곳으로.

릴케는 로댕의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조각들 사이를 걸으면서 질문했어요.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의 손이 얼마나 작고 또 얼마나 쉬 피로해지는지를, 또 움직일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를. 그래서 우리는 수백 개의 손처럼 살았던 손, 작품에 이르는 먼 길을 떠나기 위해 해뜨기 전에 일어났던 백성의 손처럼 살았던 이 손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손을 지배하고 있는 이가 궁금하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런데 릴케의 이 찬탄 어린 질문에 ‘그는 관절염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라는 대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미켈란젤로나 헨리 무어 같은 조각가들이 관절염으로 고생한 걸 보면 수백 개의 손처럼 살았던 로댕의 손도 멀쩡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저녁에 옷을 벗듯 의무를 쉽게 벗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우리는 더 이상 못 쓰게 된 손의 고통 속에서 하던 일을 간신히 내려놓습니다.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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