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을 때 한국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일본의 그것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사람들이 목소리가 크다.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화를 내거나 남을 위협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경우다. 그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학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안 되면 폭력으로 호소할 경우도 있다. 단순히 때리는 것이 아니라 하이킥까지 한다. 그때는 설마 스크린 속에서 짜낸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살면서 그런 실제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서 포장마차에서 말로 싸우는 손님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한국어를 잘 알아 듣지 못할 때라 무엇 때문에 둘이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이 느닷없이 어린 쪽에게 하이킥을 하였다. 완전히 치고 받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이 킥을 당한 사람이 울면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화해하고 소주잔을 짱 하고 조금 전까지 내가 본 건 환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하이킥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을 목격한 셈인데, 어쨌든 하이킥은 이방인인 나에게는 극단적인 몸짓으로 보였다.

포장마차가 있는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 같은 경쟁사회이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좀 더 경쟁심이 강한 것 같다. 경쟁심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정당성, 즉 자기주장이 더 강한 사회라는 뜻이다. 얼마 전 한국의 재벌기업에 근무하는 일본인 임원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목표치를 설정하는데 일본 기업은 비교적 높은 목표치를 설정하는데 비해 그가 근무한 한국기업들은 낮은 목표치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목표치를 달성 못한 경우 해당 사원에 평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낮은 목표를 달성한 사원은 그 일본인 임원과 면담했을 때 자신의 업무평가를 A등급으로 자진 신고했다고 한다. 일본인 임원은 “왜 A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사원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좀 더 높은 목표를 가지라고 부하를 고무시키려는 질문이었는데, 그 사원은 자신의 A등급이 부정 당했다고 느낀 것이다. 자신이 우수한 인재라는 주장이 일본인 임원의 눈에는 스스로 발전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자신의 정당성과 능력을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때로는 자학하거나 폭력에 호소하는 경우도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인의 경우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아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평가를 외국인에게서 자주 받는다. 일본인들은 자기가 자신을 평가하기보다는 제3자가 평가해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일본 속담에 “능력 있는 매는 발톱을 감춘다”는 것이 있다. 능력이 있는 자는 그것을 결정적인 순간에만 보여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3자의 평가가 중요하다. 주변의 평가가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논리적으로 잘못이 있다면 지금 사회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포장마차에서 하이킥을 본 일이 전혀 없다. 하긴 내가 한국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사회에 과도기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그 때보다 훨씬 나아졌고, 설사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편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인 말로 그것을 관철시키려 하지 무턱대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포장마차의 하이킥이 때로 그리울 때가 있다는 거다. 하이킥까지 연출되었던 다툼이 눈물의 사과와 술잔 기울인 담소로 마무리되었다는,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본 듯한 기분이 남아있어서일까. 왠지 그때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매사에 더 진지하고 훨씬 열정적이었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모를 일이다.

쓰치다 마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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