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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만은…” 고민 깊었던 조계종, 화쟁 정신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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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만은…” 고민 깊었던 조계종, 화쟁 정신으로 풀었다

입력
2015.12.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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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서 25일째 은신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출두하기 위해 화쟁위 도법스님과 함께 관음전을 나서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조계사에서 25일째 은신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출두하기 위해 화쟁위 도법스님과 함께 관음전을 나서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화쟁(和諍)과 상생(相生)의 진심이 통했다. 조계사에 은신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자진 퇴거하면서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를 둘러싼 민주노총과 경찰의 일촉즉발의 대립이 일단락되자 종단 안팎은 종단이 시종일관 강조해 온 화쟁의 정신이 사태를 원만히 풀어냈다며 안도했다. 양 진영의 압박과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정부 측과 민주노총을 모두 설득하고, 성역으로서의 조계사의 위상을 지켜내는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지난달 16일 조계사로 피신한 한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요청 사항은 ▲평화로운 집회의 보장 ▲노동자 대표와 정부의 대화 ▲정부의 노동법 개정 중단 등 세 가지다. 다양한 종파, 이론적 대립을 통합하려는 원효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2010년 설립된 화쟁위는 4대강 문제, 철도노조 파업 등 각종 분쟁 현장에서 중재역할을 해왔다.

당초 화쟁위는 “법 위에 있는 기구가 아닌 만큼 중재의 내용은 다소 한정적일 것”이라면서도 ‘평화로운 집회’의 중재에 의지를 보였다. 무엇보다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이번 기회에 평화로운 집회 문화의 전기를 마련하자”며 현안 중재에 공을 들였다.

일각에서는 “화쟁위 입장이 종단 공식입장은 아니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졌지만,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조계사와 신도회, 화쟁위가 국민과 불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잘 대처해달라”고 힘을 실으면서 중재가 탄력을 받았다. 5일 진행된 민중총궐기에서는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열어 “종교인들이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며 “평화로운 집회의 진행”을 호소했고 태고종, 원불교, 대한성공회 사제단 등이 힘을 보탰다. 5일 집회 이후에는 한 위원장의 자진퇴거에 대한 조계사 신도들의 요구가 높아지자 “다 같이 사는 법을 고민하자”며 설득을 거듭했다.

사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던 행정부 수장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관음전 앞에서 직원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9일 오전 대변인 일감 스님을 통해 경찰의 자제를 당부한데 이어, 오후 5시에는 직접 브리핑에 나서 “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경찰의 법 집행 명분을 존중하면서도 소도(蘇塗)나 성역으로서 조계사의 위상을 지켜낸 셈이다.

조계사에 은신해 온 한상균(맨 오른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자진 퇴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찾아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을 만나고 있다. 자승 스님은 한 위원장에게 “노동문제에 종단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한 뒤 자신의 염주를 건네며 격려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계사에 은신해 온 한상균(맨 오른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자진 퇴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찾아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을 만나고 있다. 자승 스님은 한 위원장에게 “노동문제에 종단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한 뒤 자신의 염주를 건네며 격려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승 스님과 도법 스님의 대처를 바라보는 종단 안팎은 감회가 새롭다는 반응이다. 종단의 한 스님은 “2002년에는 경찰이 신발을 신은 채 조계사 대웅전에 들어와 발전노조원을 체포하는 등 불교계가 모욕을 당했는데도, 종단 지도부가 경찰 진입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쟁위와 각종 쇄신기구 설치, 월간 대중공사(대토론회) 진행 등으로 종단의 풍토와 의사결정 과정이 달라진데다 불교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된 점이 무엇보다 종단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종단이 양 진영의 거센 비난으로 적잖은 마음 고생을 하며 ‘중도의 고단함’을 절감했다는 반응이다. 종단 한 관계자는 “노동법 개악 등 국회에서 진행되는 사안에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종단이 최선을 다했지만 왜 보호하냐, 왜 내치냐 등 양측의 항변이 말도 못하게 많았다”고 쓴 맛을 다셨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 규정했던 한 위원장이 은신 중에도 페이스북 활동, 창문에서의 인사 등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이어가자 종단 지도부는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종단 한 스님은 “누구든, 어느 것이든 저마다의 타당성을 지닌다는 화쟁의 정신이 현실에서 구현되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절감하면서도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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