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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룸 찾는 2030 “시끌벅적 송년회 대신 우리만의 공간…”

입력
2015.12.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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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의 한 파티룸 내부 모습.
서울 신촌의 한 파티룸 내부 모습.

직장인 김명지(28ㆍ서울 강동구)씨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올해 좀 색다른 송년회를 할 생각이다. 집 근처 파티룸을 빌려 각자 준비해온 풍선, 조명, 꽃 등 각종 파티용품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꾸미기로 한 것이다. 일반 호텔 객실 두세 개 정도로 넓은 파티룸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및 음향 시설도 있고 바비큐 요리를 할 수 있는 테라스도 있다. 음식도 싸갈 수 있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을 가져와 추억을 곱씹으며 모처럼의 만남을 기념하기로 했다.

김씨가 모임에 변화를 주기로 한 것은 도심 인파에 치여 부산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쫓기듯 자리를 옮기다 결국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던 송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달 시작된 부서, 팀, 거래처와의 술자리 릴레이로 심신이 지치는 시기인 만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는 “부어라, 마셔라”하는 분위기에서 해방되고 싶기도 했다. 김씨는 “송년회 때는 일 때문에 평소 잘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생각”이라고 말했다.

20~30대 전용공간 ‘파티룸’

20~30대 젋은이들에게 요즘 연말 모임 장소로 파티룸이 대세다. 파티룸은 일반 모텔 또는 주택을 개조해 파티용 시설을 설치한 공간. 불특정 다수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 앉아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장소보다는 이들은 아는 사람끼리 오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맞춤형 장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파티 장소로 한 때 각광받던 레지던스나 호텔에 비해서는 경제적 부담도 적어 남다른 기억을 남기고 싶은 실속파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다. 파티룸은 실제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15명 정도까지 소규모 모임에 적합한 규모다. 서울 홍대 앞이나 이태원 등에서는 상가나 주택을 개조한 독채 형태가, 종로ㆍ강남 등 도심 및 지방도시에선 일반 모텔의 최상위층을 큰 방으로 만든 스위트룸 형태가 보편적이다.

파티룸이 선보이기 시작한 4~5년 전만 해도 단순히 연인들을 위한 이벤트 공간 성격 위주였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재 같은 형태로 변모했다. 특히 역 주변이나 변두리에 자리해 음습하고 불결한 숙박업소 이미지였던 모텔들이 모임용 시설을 확충하면서 이제는 파티룸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됐다. 3년 전부터 매년 직장 동료들과 파티룸을 빌려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직장인 노연희(32)씨는 “처음 파티룸을 찾았을 땐 전형적인 모텔 간판이 세워져 있어 들어가기가 꺼려졌던 게 사실이었다”며 “지금은 외양도 깔끔하고 인식도 달라져 모임하면 파티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장은빛씨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서울 녹번동의 한 파티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빛씨 제공.
직장인 장은빛씨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서울 녹번동의 한 파티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빛씨 제공.

2030 파티문화에 익숙

2030세대가 특별한 날, 최적의 장소로 파티룸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들이 ‘나 또는 우리들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자신들의 개성과 취향을 공유하는 데 이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는 셈이다. 크리스마스파티를 위해 이태원의 한 파티룸을 대여했다는 직장인 박연희(28)씨는 “장소를 꾸미기 위해 콘셉트를 잡고 소품의 분위기를 여기에 맞추면서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십 수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존 송년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층의 파티룸 선호는 이들이 이미 어학연수나 조기유학, 해외파견 등으로 외국의 파티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한 이유다. 어린 시절부터 미드나 헐리웃 영화를 즐겨봤던 이들은 모임장소로 자연스럽게 파티를 떠올릴 수 있는 문화적 배경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파티룸에서 유학시절 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졌다는 직장인 이미영(36ㆍ가명)씨는 “드레스코드에 맞춰 다들 옷을 차려 입었고 테라스에서 와인을 함께 마시며 선물도 주고 받았다. 일반 술집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파티룸이 특급호텔이나 레지던스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외부음식 반입과 취사에 제약이 적다는 점도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실제 파티룸은 4~8명이 사용 가능한 33.0㎡ 기준으로 대여료가 주중 하루 10만~15만원, 주말 15만~20만원 정도다. 크리스마스 같은 극(極)성수기에 100만원이 넘는 호텔과 비교하면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직장인 장은빛(31)씨는 “9월 지인 5명과 함께 인천 석남동의 한 파티룸을 찾았는데 1인당 5만원씩 모은 회비로 숙박과 식비 등을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직장인 장은빛씨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서울 녹번동의 한 파티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빛씨 제공.
직장인 장은빛씨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서울 녹번동의 한 파티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빛씨 제공.

SNS 파티룸 문화 확산 촉발

2030세대의 놀이터가 된 파티룸은 젊은이들의 필수품인 모바일과 결합하며 거침없이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어떤 곳이 시설과 서비스가 좋은지, 가격이 저렴한지 등 실시간으로 정보공유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남성들끼리 파티룸을 빌려 요리를 하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인증샷’으로 SNS에 올라오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숙박업자들도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야놀자’ ‘여기 어때’ ‘핀스팟’ 등 숙박앱과 제휴를 맺고 사전예약 및 결제, 실시간 빈 방 확인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년 차 주부로 최근 대학 동기모임을 파티룸에서 가졌다는 김명화(31)씨는 “앱을 통해 파티룸을 단 몇 분만에 예약하고 후기 및 아이디어 이벤트를 통해 이용권도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분석한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의 혈연ㆍ학연 중심의 집단적 문화보다는 개인의 기호에 따라 소규모로 모이는 특성이 있다”며 “자신들만의 사적인 일상을 즐기면서도 관심사가 같은 이들에게만큼은 이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발현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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