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엄지 이상우 오한기.. “소설 이후의 소설”은?

김엄지 작가. 2010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등단했을 때부터 걸한 입담으로 주목받았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강렬한 이미지의 연결로 소설을 구성하는 이상우 작가. 2011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문학동네 제공
오한기 작가에게선 새로운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201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현대문학 제공

젊은 작가들의 첫 소설 출간은 매년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6월 신경숙 표절 사태를 전후로 주요 출판사들의 대표가 바뀌고, 역사 깊은 문예지들이 폐간된 자리를 젊은 문예지가 메우는 등 지각 변동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표절 사태 ‘이후’가 아닌 ‘전후’로 일어났다는 건 문단 안에 전복의 씨앗이 오래 전 뿌려졌음을 보여준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간된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은 그 첫 열매로 봐도 무방하다.

김엄지 ‘미래를 도모하는 가운데’(문학과지성사), 이상우 ‘프리즘’(문학동네), 오한기 ‘의인법’(현대문학)은 첫 소설집이란 것과 읽는 이를 난감하게 한다는 것 외엔 아무 공통점이 없다. 해석 불가의 텍스트를 두고 평론가와 독자들은 ‘N포세대의 절망’ 같은 이해 가능한 단어 안에 포섭하려고 시도하지만, 해석을 하면 할수록 구차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해 안 가면 그냥 스킵(skip)하세요.”

지난달 말 만난 김엄지 작가는 해석의 지옥에 빠진 자들을 공식 해방시켰다. 1988년생으로 2010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등단한 그는 ‘떡, 개, 좆’으로 시작하는 걸한 입담과 짧고 날렵한 문장, 읽기는 쉬운데 읽고 나면 딱히 손에 쥐여지는 게 없는 묘한 이야기로 등단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표제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에 등장하는 ‘그’는 다이빙을 하기 위해 수심 3m 이상의 계곡을 찾아 나선다. 3년 전 다큐멘터리에서 돌고래를 본 순간 불현듯 다이빙에 대한 욕구가 치솟은 것이다. 그러나 계곡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민박집 노파가 “힘 있게” 그려준 약도는 맞는 게 하나도 없고, 정오면 비가 그칠 것이란 확신에 찬 예언도 빗나간다. 비를 맞으며 헤매던 그는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건다. ‘우린 왜 헤어진 거야? 그는 문득 궁금했다. 미래를 위해서. 헤어진 여자가 대답했다.’

“좋은 미래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마치 벗어나면 안 될 길이 있는 것처럼 안달 내는 사람들 보면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지 신기해요. 각자의 미래를 도모하면 될 일인데.”

2011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상우 작가는 같은 1988년생이다. 의미를 탈색시키고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이야기를 전개한다. ‘비치’는 이모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브라질로 떠난 한 영화배우 이야기다. 주인공과 동행여성은 끊임없이 떠들고 약에 취한 한담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의 진실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네 전 남자친구 이야기나 계속해봐. -글쎄. 그 애는 말끝마다 항상 조지 클루니를 욕하는 버릇이 있었어. 씨발 조지 클루니, 좆 같은 조지 클루니, 역겨운 조지 클루니, 죽어버려 조지 클루니. 등등. -조지 클루니가 시 낭독회라도 열었었나? -아니. 그 애는 그냥 여러 가지로 불행했어. 그래서 조지 클루니를 욕했던 거야. 그래야만 세상의 균형이 맞아진다고 생각했던 거지.’

텅 빈 서사의 자리를 채우는 건 강렬한 이미지다. 휴 그랜트 가면을 쓴 노파, 얼굴에 구멍이 난 이모, 머리 위에 브래지어를 얹고 기도하는 마쿰바(브라질의 마술적 종교) 신자들.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이름 없는 나라의 뒷골목에서 당하는 봉변처럼 섬뜩하고 매혹적이다.

1985년생 오한기 작가는 201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 속에 소설 창작 과정을 노출하는 메타소설 양식이나 기존에 쓰여진 텍스트를 방대하게 인용ㆍ차용하는 것에서 새로운 소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표제작 ‘의인법’에선 홍보대행사에 다니며 소설을 쓰다가 싫증을 내는 인물과 필생의 소설을 쓰기 위해 원양어선을 타는 친구가 등장한다. ‘나는 안다. 소설은 인정받지 못 했고 빚은 늘어만 갔기 때문에 이제 갈 곳이라곤 거장의 길이 아니면 죽음의 망망대해밖에 없다는 것을(…) 이 나라에는 더 이상 문학이라 부를만한 게 없단 말이야.’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소설 이후의 소설’은 무엇일까. 한 평론가는 “젊은 작가들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단어는 없으며 이들을 일정 사조로 묶어 부르기까지는 몇 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우ㆍ오한기와 ‘후장(後腸)사실주의’라는 문학그룹을 결성한 정지돈 작가는 금정연 서평가와 함께 쓴 ‘프리즘’ 해설에 절망도 희망도 아닌 선언을 한다.

“우리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게 너무 좋았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정연은 메일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라고 물었다. 나는 to the future라고 답했고 금정연은 다시 we are the future라고 답했다. 그렇다.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

김엄지 소설가 첫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이상우 소설가 첫 소설집 '프리즘'
오한기 첫 소설집 '의인법'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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