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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성지’ 남산을 달리다

입력
2015.12.0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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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아니라 웬 달리기냐고? 요새는 산에서 달리는 게 유행이란다. 이름하여 ‘트레일 러닝’이다. 산길, 오솔길을 뜻하는 트레일(Trail)과 달리기(Running)가 만난 것이니 좋게 말하면 자연을 벗 삼아 달리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걸어가도 힘든 산을 ‘죽어라’ 달리는 일이다. 이미 유럽, 미국 등지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자리매김을 했고, 한국에는 1990년대 초반 ‘산악마라톤’의 개념으로 도입됐다. 트레일 러닝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해 전 일이다.

경리단길 방향에서 바라본 남산의 야경.
경리단길 방향에서 바라본 남산의 야경.

전국에 이름난 코스들이 많지만, 서울은 도심에서도 쉽게 숲길을 만날 수 있어 ‘시티 트레일 러닝(City Trail Running)’까지 가능한 곳이다. 아차산, 대모산 등이 트레일러너들의 단골 코스다. 그 중에서도 남산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호젓한 산길을 달릴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도시의 화려한 야경도 즐길 수 있어 달리기의 흥취를 돋운다. 게다가 남산 순환로를 따라 폭 4m의 달리기 전용 트랙이 깔려 있기 때문에 마라톤ㆍ트라이애슬론 등을 즐기는 이들의 전지훈련이 이뤄지는 곳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 코스까지 난이도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래, 그럼 나도 유행에 발 맞춰 남산을 달려보자’며 무턱대고 덤비는 건 금물이다. 트레일 러닝은 다소 과격한 운동이다. 전신 근육을 쓰는데다가, 바위나 나무뿌리 등이 그대로 드러난 길을 달리는 일이기 때문에 요령이 필요하다. 자신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해야 하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골고루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익혀야 한다. 혼자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 러닝 크루에 가입해 기술과 체력을 다져나가는 것이 좋다. 특별한 가입절차 없이 SNS를 통해 번개 달리기를 하는 공지하는 크루도 많다.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안상현씨.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안상현씨.

기자도 지난 1일 늦은 저녁 남산에서 열린 ‘달리기 번개모임’에 동참했다.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막걸리집을 운영하는 안상현(32)씨가 이 모임의 주최자다. 트라이애슬론에 푹 빠져 있는 상현씨는 남산을 근거지로 한 다양한 달리기 모임을 기획하고 주최한다. 최근 남산을 달린 후,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대접하는 묘안을 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건강한 신체와 마음가짐, 소액의 참가비만 지참하면 된다.

낯선 이들과 달리는 것은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이날도 남5ㆍ여5 ‘황금 비율’로 10명이 모였다. 경리단길 골목 작은 공터에 둥글게 선 이들은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한다. 쑥스러움과 어색함이 묻어난다. 딱 미팅을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하면 맞겠다. ‘자 그럼 상체부터 하체까지 스트레칭을 하겠습니다. 목부터 돌려볼까요’라는 말로 이 모임의 공식 활동이 시작된다.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트레일러닝 등 갖가지 달리기를 훈련하는 이들은 남산을 달리기의 '성지'로 여긴다.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트레일러닝 등 갖가지 달리기를 훈련하는 이들은 남산을 달리기의 '성지'로 여긴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본격적인 트레일러닝이 시작된다. 코스는 워밍업(2km)-달리기(5km)-쿨다운(3km)으로 구성된다. 총 10km 정도를 1시간 30분 가량 뛰게 되는데, 입문자들에게는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다. 오르막 내리막, 평지가 반복되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이 관건이다. 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해 달리는 와중에도 상체 등을 계속 흔들어 주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이 모임에서는 각자 실력에 맞춰 달릴 수 있도록 2~3그룹으로 나뉘어 달리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나마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위안거리이면서 동시에 촉매제가 된다. 혼자였다면 분명 슬금슬금 걷게 됐을 텐데, 이 모임에서만큼은 ‘적어도 민폐는 주지 말자’라는 생각이 두 다리를 채찍질한다. 이날 함께 달린 이은상(28)씨도 “지금 죽을 거 같다. 혼자 달렸으면 벌써 집에 돌아갔을 것”이라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막걸리.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막걸리.

경리단길, 해방촌, 남산 둘레길까지 구석구석 달리고 나면 간단한 뒤풀이가 준비돼 있다. 격렬한 운동 후에는 계란이나 두부 등 웰빙 안주거리와 막걸리로 단백질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 상현씨의 지론이다. 물론 이 지론은 핑계다. 진짜 목적은 지속적인 만남에 있다. 옹기종기 모여 몸을 녹이고 나면 ‘다음에도 또 달리러 나오겠다’라는 선포와 약속이 오간다. 안씨는 “영하 5도에도 워밍업만 제대로 해주면 달리는데 전혀 문제 없다. 언제든 나오시라”며 반긴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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