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 결과가 나왔다. 그간 수시 전형을 통해 이미 진로를 결정한 경우도 있겠지만, 수능 성적을 받아 든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입시철인 것 같다. 이제 학생들은 수시 결과에 따라 학교를 고르거나, 또는 자신의 수능 성적을 토대로 정시 지원 대학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아쉽게도, 그들이 대학에서 받을 교육의 질이 주된 기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어떤 대학을 나와야, 또는 어떤 전공을 해야 향후 취업에 유리한가라는 잣대를 가지고 학교를 정한다. 우리 사회의 인식에서 대학은 취업 준비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위와 같은 대학관은 대학의 역사를 잠시만 살펴보아도 쉽게 무너진다. 오늘날의 대학은 이슬람 문명에 그 원형이 있었지만, 중세의 유럽에서 기원하였다. 12세기 유럽 지식인들은 당시 높아진 교육열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형식의 고급교육기관을 세웠는데, 파리, 볼로냐, 살라망카, 옥스퍼드 대학이 그 최초의 예들이었다. 그 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교육의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대학 학부에 해당되는 과정에서는 소위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을, 그리고 대학원에 해당되는 시기에는 전공 교육을 실시하는 엄격한 이분법이었다.

리버럴 아츠는 고대 그리스부터 그 기록이 보이기는 하지만 중세 유럽 대학의 주역들이 본격적으로 사용했던 개념으로서, 오늘날의 의미에서 어학, 문학, 철학, 수학, 그리고 일부 자연과학을 가리킨다. 이렇게 본다면, 국내에서 교양 또는 인문학으로 흔히 오역되는 리버럴 아츠는 기초학문과 사실상 같은 뜻이라 할 수 있다. 그 범위는 유럽이 과학혁명과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넓어져서, 이제는 경제학, 역사학, 인류학 등 근대 학문과 더불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당시 태어난 과학 분과들도 포함하게 되었다.

대학의 학부가 이 같은 기초학문 학습의 장으로 조직된 데에는 서양의 대학 당국이 그 설립 시기부터 현재까지 지켜 온 신념이 바탕이 되었다. 그들은 기초학문을 ‘리버럴’, 즉 ‘자유’ 학문이라 부르며, 이를 학습한 인간은 ‘어리석은’ 염려, 정념,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이 자유로운 인간은 유연하고 비판적인 사유 및 참신한 발상을 하며, 이를 주변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주어진 문제 해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구성하는 전제들을 해체시켜 이를 재설정하는 능력을 가질 것이고, 이를 통해 기존 관념이나 체계를 뒤흔드는 사고를 끌어낼 것이다.

이처럼 서양 대학의 주역들에게 학부 교육은 전문지식 습득이 아니라, 사고력 훈련에 목적이 있었다. 전문지식 교육과 취업 대비 전문인 양성은 대학원의 몫이었다. 그 곳은 학부에서 다져진 기초학문의 토양 위에서 전공 학문들, 즉 중세에는 신학, 법학, 의학, 근대에 와서는 이에 더해 공학, 경영학, 행정학 그리고 전문화된 기초학문들을 교육하는 장이었다.

학부의 기초학문 교육, 그리고 대학원의 ‘취업 교육’이라는 이분법은 1,000년 가까이 되는 서양 대학의 역사에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산업화와 더불어 학부에서의 ‘조기’ 전공 교육 주장이 제기되자, 예일대는 향후 미국 대학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1828년 보고서에서 “학부 대학생들을 위한 과목은 전공학문을 포함하지 않도록 한다. 우리의 목적은 학문 분과들 중 그 어떤 하나에만 특수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에 공통되는 토대를 놓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19세기 말 대학의 대형화가 몰고 온 연구중심 대학 설립의 바람 속에서도, 학부의 기초학문 교육이라는 이념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기초학문 교육만을 특화한 기관인 리버럴 아츠 대학(Liberal Arts College)들이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이 이념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취업 준비기관으로서의 대학은 적어도 대학의 학부에는 적용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서양과는 다른 대학 개념을 갖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식민지 및 후발국 경험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 우리 대학의 상당수가 전문대로 출발했다는 점이 보여주듯, 당시의 학부는 기초학문 교육을 축소한 채, 취업 교육에 집중하였다. 일제의 교육 당국은 유연하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새 구도에서 문제를 재설정하는 조선인을 길러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학관은 일제의 잔재다. 한편, 선진국을 바삐 추격해야 했던 경제성장기 우리에게는 산업 전선에 즉시 투입 가능한 역군을 신속히 준비시키는 전공 교육이 대학 학부 교육의 중심인 것처럼 보였다.

식민지도, 후발국도 아닌 오늘날, 취업 준비기관이라는 대학 관념에서 벗어나 기초학문 교육을 통한 대학 혁신을 생각해 보는 것은 그리 허무맹랑한 일 같지는 않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벨상 논란’에 대한 하나의 답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다.

노경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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