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만 지나보면 금방 깨닫는 게 국민적 자부심이다.”

한때 서울시를 대표했던,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의 유력 대선 후보군에 들어 가 있는 한 정치인이 얼마 전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주 ‘점잖은’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헬조선’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청년들을 위로한다고 꺼낸 얘기라는데 한 나라의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 할 만한 발언치고는 참으로 경거망동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책을 모색한다거나 청년들의 입장을 고려한 성심 있는 위안의 손길은커녕, 기껏 한다는 말이 겨우 물질자본주의에나 기댄 천박한 성장주의자의 수준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이 정치인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자부심’도 갖지 못할 개발도상국들은 가만히 서 있다가 뺨 한 대 맞은 꼴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어느 상대를 지목해 자신의 비교우위를 점하는 거치대로 쓰는 방식은 물리적이지는 않지만 다분히 폭력적인 행위나 다름없다. 더구나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배제한 채 그저 하류인생으로 치부하기 마련인 이런 편견 의식은 타인의 삶이 지닌 가치를 폄훼하고 하나의 층위로 구분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이자 사회적 기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편견 의식이 사회적 통념으로까지 확장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빈곤의 수위나 고단한 일상의 현실만을 바라보며 형성된 이런 사회적 통념은 결국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거나 무관심의 성벽을 쌓는 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파장이 큰 정치인의 발언이 더 세심하길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제개발협력 분야 단체들의 협의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주관으로 열린 ‘아동권리실무그룹-미디어TF 워크숍’에 참석해 관련 기관들의 모금행위를 위한 사진이미지 활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제 강연을 했다. 이 워크숍은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채택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의 효율성을 살펴보고 실제 방송ㆍ홍보 등의 미디어 관련 행태를 검토하면서 실무자와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자리였다.

거기서 나는 소위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로 불리면서 여전히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의 모금 및 홍보를 위해 쓰이는 고통 이미지들이 실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는지(실례는 무수히 많다)를 이야기했다. 더불어 동정심을 자극해 참여를 유도하는 이런 방식들을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 이미지도 얼마나 가난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귀한 삶인가를 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이미지의 역기능 지적까지 맡고 나선 것은, 나 스스로 과거에 동정심만 채우며 어려운 이들의 고통스런 외형적인 이미지를 과도하게 생산해 낸 데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적 역할이 가볍지 않은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이 빈곤과 고통을 전면에 부각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사진을 활용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우선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은 결국 이 안에 있지 않겠는가.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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