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권 없는데 위헌 주장 비논리적
靑 보고ㆍ지시 모르고 진상규명 한계
9ㆍ11 부시 행적 分단위 조사 전례도
지난해 4월 1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서울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진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상황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였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누리당은 사법체계를 뒤흔든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여러 달 논란이 지속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절대 불가’를 밝힌 것이 가이드라인이 됐다. 결국 고립과 압박에 몰린 유가족들의 양보로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게 지금의 특별법이다.

강제력이 거의 없어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이 법마저도 무력화될 상황에 놓였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조사가 시작도 하기 전에 벽에 부닥쳤다. 세월호특별법 1조는 참사 발생요인과 수습과정, 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있다. 이를 위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4조)이 유지된 상태에서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5조3항)를 하도록 규정했다. 피해자의 신청이나 특조위의 직권으로 조사 안건을 정하고(22조),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13조).

세월호특조위가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 적정성 등에 관한 건’을 표결로 통과시킨 것은 절차상 하자가 없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시ㆍ대응 상황과 각 부처 이행사항, 정부 부처에서 청와대로 보고한 사항 등 5가지 세부 항목도 특별법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특조위의 대통령 조사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위헌적 발상”이라는 반발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84조를 들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형사소추는 기소를 의미한다는 헌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로 볼 때 기소권도 없는 특조위의 조사를 위헌이라고 몰아붙이는 청와대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 헌법학자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저서 ‘헌법학원론’에도 “헌법84조에서 말하는 형사상의 소추는 기소를 의미한다”고 서술돼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대응과 행적은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모두 밝혀졌기 때문에 특조위 조사가 ‘모욕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청와대가 밝힌 것은 박 대통령이 21차례에 보고받고 7차례 지시를 내렸다는 게 전부다. 보고와 지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한 바가 없다. 이 것만으로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 대응이 적절했는지 규명하기가 어렵다. 당시 검찰과 감사원에서 청와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물었다. TV를 보고 세월호가 가라앉아 구조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사실을 알고 있던 국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국민이 아직도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과 궁금증을 갖고 있는 이유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어렵다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위헌적 발상이라느니 “불순한 의도”라는 추상적인 언급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에 역부족이다.

9ㆍ11테러가 발생한 후 미국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2년10개월 동안 조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 첫 문단은 “…펜실베이니아가 끝에는 백악관에 관광 온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플로리다주 사라토사에서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아침 조깅에 나섰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오전 8시46분, 55분, 9시 등 거의 몇 분 간격으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돼 있다. 사건 당시 대통령의 행동을 낱낱이 기술함으로써 대응이 기민하고 적절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는 특조위 조사 종료 후 3개월 내에 종합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보고서에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당일 행적이 빠지게 된다. 그런 보고서에서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해법을 얻을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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