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체납 백태

350억 탈루한 이규태, 와인 1200병, 명품가방 30개 숨겨
국세청 2015년도 세금 고액상습 체납자 25일 명단 공개
해외 유령 법인 명의 국내에 호화주택을 사면서도 35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았던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주택 지하에 와인저장소에서 1,200병에 달하는 고급 와인을 보관하다 최근 국세청에 적발됐다. 국세청 제공.

지난 9월 경북의 한 전원주택에 대구지방국세청 소속의 조사관 8명이 들이닥쳤다. 양도소득세 등 9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잠적한 서모(55)씨가 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였다. 서씨는 들이닥친 국세청 직원들에게 “세금을 낼 돈이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집 안 구석구석을 수색하던 직원 한 명이 재래식 가마솥이 놓인 부뚜막 아궁이에서 검은색 가죽 가방 두 개를 발견했다.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 낸 가방 안에서는 5만원권 지폐 5억원과 1억원 상당의 100달러 지폐 다발, 총 6억원의 현금이 쏟아져 나왔다.

국세청이 25일 세금 고액ㆍ상습 체납자 2,216명(개인 1,526명ㆍ법인 700개)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은 올해 기준으로 체납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도록 5억원 이상의 국세를 내지 않은 개인과 법인이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은 모두 3조7,832억원, 인당 평균 17억원으로 집계됐다.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사례를 보면 밀린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체납자들의 갖가지 ‘꼼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미술품 감정ㆍ판매업자인 김모(56)씨는 100억원 가까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본인 명의의 회사를 폐업했다가 지난 7월 국세청에 적발됐다. 가지고 있던 500점에 달하는 도자기 등 고미술품들은 서울 종로구의 단층 한옥 주택에 꽁꽁 숨겨뒀다. 돈이 없어 세금을 내지 못한다면서도 차명으로 사업을 계속한 것은 물론, 고급 오피스텔을 지인 명의로 빌려 호화생활을 해 왔다는 게 국세청 설명이다.

1980년대 1세대 무기중개업자로 알려진 무기중개상 이규태(66) 일광공영 회장도 국세청의 현장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최근 검찰에서 방위사업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가 되면서 350억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해외 페이퍼컴퍼니(유령 법인) 명의로 서울 성북구의 호화주택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세청 조사관이 지난 9월 이 집을 조사했는데 고급 와인 1,200병, 명품가방 30개, 그림 2점, 골프채 2세트, 거북선 모양의 금장식 등이 발견됐다.

부가가치세 43억원을 체납한 전북의 한 골프장은 신용카드 매출 압류를 피하기 위해 그린피를 현금으로만 받다 국세청에 적발됐다. 받은 현금은 은행에 입금하지 않고 금고나 캐디 사물함, 사무실 책상 서랍 등 골프장 곳곳에 숨겼다. 국세청 관계자는 “골프장 이용객들이 주말에 많다는 점을 생각해 월요일 아침에 현장수색을 했는데, 그날 압류된 돈만 2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명단 중에서는 방위산업체 블루니어 전 대표 박기성(54)씨가 법인세 등 276억원을 내지 않아, 올해 가장 많은 세금을 체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공군 하사관 출신으로 서류를 조작해 공군 주력 전투기를 정비한 것처럼 꾸며 공군과 방위사업청 등에서 243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법인 중에는 씨앤에이취케미칼(대표 박수목)이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등 490억원을 내지 않아 1위로 이름을 올렸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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