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란 일반적으로는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지배층을 말한다. 국민과 같은 뜻으로 쓰일 때도 많지만 국민이 지배 엘리트를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서로 다르다.

통상 ‘인민’ ‘민중’으로 번역되는 영어 people와 프랑스어 peuple, 그리고 스페인어 pueblo와 이탈리아어 popolo은 라틴어 popul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어원적으로 평민, 대중, 다중, 군중 등의 의미를 포함했다. 독일어로는 Volk인데, 이 말은 영어 folk에 상응한다. 그러니까, 폭스바겐은 정확히 말해서 ‘인민차’다.

고대에는 ‘인민’에 속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공식적이고 주체적인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절대주의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민은 사회의 ‘외적’ 구성원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을 거친 다음에야, 소시민 및 중간계층, 노동자, 농민 등이 ‘인민’으로 불리면서 서서히 사회와 국가의 ‘내적’인,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피지배층에 속하는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한자어 인민(人民)은 예컨대 “맹자”에 나온다. “제후의 세 가지 보물은 토지, 인민, 정사(政事)다”는 구절이 그것인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인민은 토지와 마찬가지로 제후의 소유물이었고, 오늘날 정치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정사’ 역시 제후만의 고유한 행위였다.

동북아시아에서 people의 번역어로 ‘인민’이 처음 쓰인 것은 1862년의 “영일사전”에서였다. 이 때부터 ‘인민’은 근대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봉건 군주에게 예속된 ‘신민(臣民)’과는 대조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전교조를 공격하면서, ‘인민’이란 표현을 썼다고 비난한 바 있다. 실제로 전교조에서 사용한 단어는 ‘빈민’이었으므로 결국 오보에 바탕을 둔 이념적 공세인 것이다. 현재까지 한 신문은 오보에 대해 아주 작은 정정 기사만을 내보냈고 다른 두 신문은 모른 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보 그 자체, 오보에 대한 사과나 정정 여부 따위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보수 언론들이 이념적 색깔 공세를 통한 사상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역사적으로 보자면 일제 식민지 시기에나 통했을 법한 일이니까,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작하는 보수 진영은 이념적 시체애호증에 사로잡혀서 아주 낡아빠진 사상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회경제적인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이념적 좌우 갈등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또, 그 갈등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적당히 쉽게 봉합될 것을 기대하는 것도 매우 유치하고 나이브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립, 갈등, 공방 등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우리가 만약 조세 문제를 거론한다면, 인민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국민’이란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민주적 시스템이라든가 공동체를 지켜내는 데에 필수적인 윤리적 자질 등에 관해서 따질 때에는 ‘시민’이란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헬조선’의 젊은 세대들은 소위 금수저, 은수저를 동수저, 흙수저 등과 직관적, 일상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 흙수저가 바로 인민이다.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의 유명한 구절도 ‘동/ 흙수저의, 동/ 흙수저에 의한, 동/ 흙수저을 위한’이 된다.

보수 언론은 권력과 자산과 매스컴을 독점한 자들의 편이므로, 인민이란 말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좌우를 떠나서 우리가 합의하고 있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이므로, 어떤 사상, 어떤 개념 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파쇼적으로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반칙’이다.

갑골문자를 보면, 한자어 민(民)은 눈 아래 십자형의 도구가 놓여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러 눈을 찔러 멀게 한 상태에서 노예로 부린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이후 ‘장님 노예’란 의미가 소실되었는데, 그래서 전서체에서는 다시 망(亡)를 붙여 ‘백성 맹(氓)’ 자를 새로 만들어냈다. 동/ 흙수저로 밥 먹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우리 인민들은 계속해서 다시 눈까지 찔리고 있는 중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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