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10. 이민 간 참새

‘이민 간 참새’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 그림

이슬람국가(IS)는 왜 파리 테러를 저질렀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유럽의 ‘난민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IS가 노린 것들 중 하나라고 한다. IS는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연 ‘유럽의 문’이 도로 닫히기를 원한다. 파리 테러 이후 난민과 무슬림 이민자들을 증오하는 유럽인들이 늘고 있다. 그럴수록 난민과 무슬림 이민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IS의 꼬임에 넘어가기 쉬워질 것이다.

내전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조국을 탈출해 몰려드는 난민들은 유럽의 두통거리다. 그런데 서구 언론들은 이 난민들을 난민이라 부르지 않고 이민자 혹은 이주민으로 부른다. 난민 지위를 인정해 주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입국시켜야 하니 이민자로 부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민자든 난민이든 살고 있던 곳이 불만족스러워서 떠나왔고, 이주한 곳에 정착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난민에 포용적인 사람들은 “우리 모두는 한 때 이방인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주민의 후예다. 먹고살기 위해 대륙을 건너거나 국경을 넘은 조상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먹이를 찾아서, 새끼를 낳거나 안전하게 돌보려고 이주를 한다. 그런데 사람에 의해 이주 당한 동물들도 있다. 미국 이민 초기에 유럽인들은 프랑스 개, 샴 고양이, 영국 소, 아이슬란드 양 등을 동반해 대서양을 건넜다. 가축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참새도 영국에서 이주했다고 한다. 영국의 참새는 왜 미국으로 갔을까?

대서양을 건너려는 존과 참새 1,000마리. 어마어마한 참새떼가 배웅 나온다.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이민 간 참새’는 원래 미국에 없었던 참새가 어떻게 미국에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기록의 공백은 상상력으로 메웠다. 영국 소년 존 바슬리는 저녁거리로 쓸 참새를 잡으려다가 새끼 참새 한 마리를 키우게 되고 참새들과 친구가 됐다. 청년이 된 존은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 필라델피아에서 페인트공으로 취직한다. 필라델피아는 창궐하는 자벌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미국 새들이 자벌레를 먹지 않아 사람들은 자벌레 퇴치단까지 만들었지만 자벌레는 줄지 않는다. 존은 고향에 두고 온 먹성 좋은 참새들을 떠올렸고 영국 참새 1,000마리의 미국 이민 대작전을 계획한다.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존은 참새들을 배에 태워 온다. 하필이면 겨울이라 얼어 죽을까봐 참새들을 겨우내 집 안에서 보살폈다. 봄이 오자 참새들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후 수천마리도 넘는 자벌레를 잡아 새끼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점점 자벌레가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참새 짹 만세” “대단한 참새”라고 떠들어 댔지만 곧 참새들이 시끄럽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자벌레가 퇴치되자 사람들은 존과 참새들을 칭송한다.

언제는 고맙다더니 자벌레가 사라지자 참새가 시끄럽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언론 기사가 떠오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10명의 난민들… 아인슈타인, 쇼팽도 난민이었다’. 유엔난민기구가 소개한 ‘저명한 난민 136명’을 바탕으로 CNN이 10월에 보도했고 한국의 언론들도 CNN 보도를 받아썼다.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난민 출신 위인들을 소개한 것이다. 비슷한 기사가 또 있다.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 미국, 시리아 난민 수용 확대 시사’. 바람직한 기사들이지만 한 구절이 목구멍에 걸린다. “터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살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자라서 아인슈타인이나 쇼팽이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도 있는 난민 어린이들을 귀하게 여기자는 뜻은 좋다. 하지만 위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난민들은 괄호를 쳐버린 것 같아 불편하다. 실제로 위인이 될 난민들이 더 많을까? 힘들게 살아갈 난민들이 더 많을까?

참새의 미국 이주를 비웃던 사람들은 은근히 자벌레 퇴치를 기대하다가 참새들이 알을 품느라 자벌레를 잡지 않자 “참새도 소용 없군” 하며 손가락질했다. 새끼 참새들이 알을 깨고 나와 참새들이 자벌레를 잡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참새와 존을 칭송한다. 정작 자벌레가 퇴치되고 나서는 참새 때문에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한다.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를 쓸모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난민들’ 기사의 한 구절이 불편했던 것도 혹시 먼 곳에서 온 타인들을 쓸모로만 판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사람을 쓸모로만 판단하는 극단적인 경지에 오른 이들이 바로 IS다. IS는 시리아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는 난민들을 비판해 왔다. IS가 유럽의 ‘난민 증오’를 부추기는 이유는 갈 곳 없는 난민들을 꼬드겨 자신들의 전투원으로 만들고 자신들이 시리아에 세운 유사국가의 잠재적 주민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투하는 도구, 자신들의 유사국가를 유지시켜 줄 도구로 쓰일 때만 살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새끼 참새를 키우게 되면서 참새들을 먹지 않게 된 존.

새끼 참새를 키우기 전의 존 바슬리도 참새를 먹잇감으로만 여겼다. 게걸스럽고 시끄러운 참새를 귀찮게 여기면서 고소하고 쫄깃한 참새구이는 즐겨먹었다. 그러나 새끼 참새와 함께 살고 나서 존은 참새가 시끄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쾌활하고 용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참새를 먹잇감으로 보지 않게 된다. 존은 미국에서 정착한 뒤 영국에 두고 온 참새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존이 참새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온 궁극적 목표는 자벌레 퇴치가 아니라 친구들과 다시 함께 살기 위해서다.

난민들을 잠재적 테러범 혹은 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해 증오하는 것은 IS를 돕는 일이다. 난민들을 쓸모로만 판단하는 것도 한쪽 눈을 감은 처사다. (난민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지만 대량 난민이 발생한 구조적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지구촌 특히 서구사회는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약육강식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는 지켜야 할 가치다. 무턱대고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난민들이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온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주목해야 한다. 위인이 아닌 사람들의 의지와 용기도 소중하다.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자벌레가 퇴치된 후 "참새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어"라고 투덜거리지만 존과 참새들은 개의치 않는다. 다시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민 간 참새’의 마지막 페이지엔 자벌레가 퇴치된 후 참새들을 보며 찡그리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보인다. 신사는 참새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고 숙녀는 귀를 막고 있다. 그러나 한 소녀만은 미소를 짓고 있다. 소녀에게 참새는 먹잇감이나 자벌레 사냥꾼이 아니어도 좋은 듯하다. 그 소녀도 존처럼 참새의 쾌활함과 용감함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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