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최신 건강 보고서(Health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이 세계 1위인 반면, 우울증 치료제 복용은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살은 개인적 현상일까, 사회적 현상일까.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을 개인적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평화 시기와 전쟁 시기에 따라, 그리고 유대교ㆍ가톨릭ㆍ개신교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차이다. 시간과 집단에 따라 자살률이 다른 것은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에 사회라는 구조적 변수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함의한다.

뒤르켐은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통합’과 ‘규제’가 극단화될 때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통합 정도가 너무 작은 상태에선 ‘이기적’ 자살률이, 너무 큰 상태에선 ‘이타적’ 자살률이 높아지고, 규제 정도가 너무 작은 상태에선 ‘아노미적’ 자살률이, 너무 큰 상태에선 ‘숙명적’ 자살률이 높아진다. 개인적 존재와 공동체적 사회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게 뒤르켐의 메시지다.

사회학의 고전이 된 뒤르켐의 ‘자살론’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우리 사회 현실에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13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인데, OECD 평균은 12명이었다. 자살로 이끈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의 경우 자살의 동기로는 우울감 등 정신적 이유가 37.9%, 대인 관계 스트레스가 31.2%, 경제 문제가 10.1%, 신체 질병이 5.7%를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았던 또 다른 시기가 1960~7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0명 내외 정도였다. 1975년 자살률은 최근보다 높은 31.9명을 기록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삶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급속한 산업화가 가족ㆍ친족 등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의 결속을 약화시킨 결과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다시 증가한 자살률은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가 또 한 번의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자살률은 1998년 외환위기(18.4명), 2003년 카드 대란(22.6명), 2009년 금융위기(31.0명)를 계기로 높아져 왔다. 아노미적 자살이든 이기적 자살이든 자살률의 증가가 사회통합의 약화와 사회해체의 위험에 비례한다는 뒤르켐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도 타당한 셈이다.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조적 해법과 개인적 해법이 동시에 요구된다. 먼저 구조적 수준에서는, 초기 산업화 시대의 높은 자살률을 고도성장과 그 과실의 분배로 감소시킬 수 있었듯이 성장 활력의 회복, 사회 양극화의 해소, 노인 빈곤의 해결,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개편 등을 포함한 제도개혁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 수준에서의 해법이다. 이와 연관해 주목할 통계가 항우울제 복용량에 대한 국제 비교다. 18일 발표된 OECD의 ‘한눈에 보는 건강 2015’에 따르면 한국의 하루 항우울제 복용량은 28개 조사 대상국 중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OECD 항우울제 하루 평균 소비량은 우리나라의 2.9배였다.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와도 같은 것이다. 우울증을 자랑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애써 감출 필요도 없다. 우울증의 증상이 느껴진다면 당장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우울증이 방치돼 악화되면 자살에 이를 가능성이 작지 않다.

둘째,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한다. 인간은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도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 ‘아웃사이더’라고 말한 이는 영국의 작가 콜린 윌슨이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이 혼돈의 21세기에 누구나 때로는 ‘마음의 환자’인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게 외려 정상이지 않을까.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길 바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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