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SNS)사람 인터뷰] (20) 철학자 도올 김용옥

“커피가 뭔지 알아?” 누가 선생 아니랄까 봐 그는 처음 본 기자와의 대화를 질문으로 시작했다. “따라와 봐.” 구식 양옥인 통나무 출판사 사옥은 젊음이 꽃핀 서울 이화장길(동숭동) 복판의 섬이었고 거기 딸린 가정집 부엌 한 편에 커피 원두를 담은 자루들이 보관돼 있었다. “커피는 콩 맛인 거야. 오리지널 케냐 에이에이(AA)인데 커피 중 최고 귀족이지.”

이내 진행된 교습. 그라인더를 작동시키며 그가 말했다. “필터링 하는 커피가 제 맛을 내게 하려면 밀가루처럼 갈아선 안 돼. 모래 수준으로 갈아야지. 그래야 향기만 샤아악(빠져 나온다). 낙동강 물이 모래사장을 스치듯이. 그렇게 필터링이 돼야 해.” 시식이 이어졌다. 기대감을 머금은 눈이었다. “산미(酸味)가 있고 뒷맛이 쌉쌀합니다.” 커피향이 그득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67)이 돌아왔다. 지난달 신간 ‘도올의 중국 일기’ 세 권을 펴내면서다. 소식이 뜸하다 했더니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延邊)대에서 학생과 교수를 가르치느라 지난해 1년여 간 한국을 비웠던 거였다. 만주 출장은 공간 이동에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정작 그를 반긴 건 고구려였는지 모른다. 총 6권이 될 책은 그 종횡 여정의 비망록이다.

5일 만난 그는 “몇 개 대기업의 전횡과 정권의 저열한 리더십 탓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면서도 “반드시 우리 역사는 바른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유의 호통과 독설로 유명한 그가 3시간 남짓 걸린 인터뷰 끝에 피력한 건 뜻밖에 이런 낙관이었다. 호기심으로 방대하고 철저성으로 견고한 그의 성(城)에 맹신의 깃발이 내걸리진 않았을 터.

도올이 신간에서 소개한 ‘고구려 패러다임’ 지도에선 북방을 위에 배치하는 통용 지도의 구도가 뒤집혀 있다. 하지만 고구려인이 인식한 지형을 헤아리는 데엔 중국 중원이 변방에 처박힌 저 도착적 지도가 효과적이다. “반도란 말도 없애야 한다”는 게 도올의 제안이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상실의 역사… 도올의 중국일기

당대 공론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형성하기도 하는 게 선각자의 역할이다. 도올은 선생 노릇을 흔쾌히 자임한다. 의도된 해석으로 당위를 환기시킨다. ‘내가 곧 상식’이란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경계하는 건 독재다. “내 주변에 제자들이 몰려드는 건 내가 그들의 의견을 차단하지 않아서다. 다양한 견해를 흡수하며 선생도 배운다.” 역사가 특히 그렇다.

Q “중국에서 우리 역사 실상을 알게 됐다”고 책에서 밝혔다. 무지 자각이 집필 동기인가.

A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단 거다. 고구려 건국이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오해해 왔다. 중국 체류 중 고대사 터전인 동북을 샅샅이 뒤졌다. 신화적 표현 뒤에 숨은 광대한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지 마침 1,600년이 되는 해였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삼국사기를 1만번 읽는 것보다 환도산성(고구려의 도성지)에 한 번 서보는 게 우리 역사의 본질을 깨닫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신 지 100년 후에 같은 자리에서 새 역사를 쓰자고 결심했다.

Q 새로운 역사란 게 뭔가.

A 중국인들이 중원이라 부르는 황허(黃河) 문명권이 세계의 중심이고 한국 땅은 동북쪽 변방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비옥한 땅은 모두 다싱안링(大興安嶺) 이남이다. 광개토대왕이 마음에 둔 곳도 중원이 아니라 동부여와 백제, 신라, 왜(倭)였다. 역사는 이매지네이션(상상) 아니냐. 고구려인들이 만주ㆍ한반도를 잇는 남북축을 문명의 주축이라 여겼을 거란 가설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를 토대로 제시한 게 ‘고구려 패러다임’ 지도다.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노래를 불렀다 하면 전 세계에 유행시키는 싸이 같은 가수가 나오고 글로벌 경영을 하는 기업이 배출되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Q 상식적인 이야기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A 우리 민족 통사(通史)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고려 중기 때부터 역사를 바르게 볼 능력이 없는 자들한테 역사 기술이 맡겨졌다. 그들은 우리 사료 대신 (북송 때 학자) 사마광의 주관이 많이 반영된 ‘자치통감’에 의존하면서 독자적인 역사 쓰기를 포기했고 고유명사 확인도 하지 않았다. 이후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다시 고대사가 왜곡됐다. 독립 능력이 없고 자기보다 큰 걸 섬겨야 하며 분열만 일삼는 민족으로 우리를 폄훼하려는 목적 의식이 일본인들에겐 뚜렷했는데 빌미를 제공한 게 중국을 상전으로 모신 조선의 사대주의 사관이었다.

Q 우리에게도 국수주의적 사고는 피해야 할 대상이란 지적이 있다.

A 우익이나 민족종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대사가 종교적 독단과 이념적 경직 속에 갇히면서 젊은 연구자들의 기피 대상이 됐는데 이런 불행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언급하는 역사는 영토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고대사는 민족사가 아닌 문화사가 돼야 한다. 혈연적으로 관계된 민족이 더 친근감을 느낄 순 있겠지만 과거는 인류 공통의 체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은 촌스럽고 위험하다. 예부터 지금까지 관심사가 영토에 머문다.

Q 작년 강연에서 중국 청년들한테 중국이 도덕과 절제의 실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A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미국이 현재 인류 에너지의 25%를 쓰고 있다. 한데 인류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미국인들과 똑같은 수준의 문명을 영위하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구는 끝장이다.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리더십을 장악하고 싶다면 군사와 경제론 안 된다. 미국과 유럽을 능가할 수 없다. 결국 중국이 그들을 리드할 수 있는 건 도덕이다. 새 문명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은 5,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명국가의 정체성을 띠고 있다. 그 가능성을 중국에 가서 일깨운 거다. 진실하게 도와야 한다. 그래야 인류에 희망이 있다.

지난 5일 서울 동숭동 통나무 출판사 사옥에서 만난 도올 김용옥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화두로 꺼냈다. “역사라는 게 시대의 공론에 입각해야 하는 건데 그걸 대중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차단하는 게 독재”라고 도올은 역설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새빨갛다고?… 국정화란 역주행

Q 자긍심이나 책임감을 부추기기 위해 의도한 방향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게 바람직한 건가.

A 정확한 학문엔 약속이 있다. 해석도 그런 기본 논리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사실이란 건 역사적으로 이미 기술된 팩트를 의미한다. 가령 1961년에 몇몇 군인들이 한강을 건넜다. 이건 팩트다. 그러나 그건 역사는 안 된다. 왜 건넜냐.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역사가 되려면 이런 해석이 불가피하단 거다. 그러면 5ㆍ16이 군사 쿠데타냐 혁명이냐. 기존 권력 내에서 불법적으로 권력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을 학문적으로 쿠데타라고 부르고 혁명은 계급 간 충돌에서 힘없는 민중이 뒤엎었을 때 쓰는 말이다. 5ㆍ16은 혁명이 아니다.

Q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논란을 빚고 있다. 올바른 역사 해석이 정권 명분이다.

A 상식적 공론이란 게 있다. 이것과 어긋나는 내용이 교과서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모든 사람들의 우려다. ‘교과서 90%가 새빨갛다’는 주장이 정부와 여권에서 나오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정부가 설 자리는 없다. 검정 교과서란 게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쓰인 거다. 자기들이 도장을 찍었단 얘기다. 그래 놓고 자기 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새빨갛대도 그게 국정화 이유가 될 순 없다. 정말 그렇다면 그게 이 시대의 공론이기 때문이다.

Q 국정화를 통해 비주류 소수가 공론에 위배되는 해석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 하는 꼴이다.

A 그래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다. 의도야 1만%다. 하지만 되지 않는 기획이다. 너무 단수가 낮다. 의도대로 안 된다. 사상이나 역사가 몇 사람이 교과서 만들어 교육시킨다고 바뀌진 않는다. 정보 홍수 시대에 예전처럼 학생들이 순진하게 믿을 리도 없다. 우리 국민은 수준이 높다. 지금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국정화에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역사의식을 환기하는 거다. 10년만 끌고 간다면 검인정마저 탈피해 자유화로 가게 될 거다.

Q 선거 공학 차원의 전망은 엇갈린다. 어떻게 보나.

A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교과서 국정화가 총선이나 대선에 도움 되기 어렵단 걸 다 알 거다. 여당 의원들도 잘 안다. 당장 1년 후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어색한 일이냐.

“나라가 개판인데 여태껏 그럭저럭 굴러오게 한 관성만 믿고 짓밟은 놈들 더 짓밟고 이념도 경직된 방향으로 더 나아가고, 그러면 우린 더 굳건해진다? 이런 기득권층의 장담은 개소리라고, 다 개소리. 헬조선은 이런 거대한 위기에 대한 아주 말초적인 느낌일 뿐이에요.”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역사의 正義… 헬조선은 어디로

세월호 참사 직후인 작년 5월 도올은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란 제목의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 큰 반향을 불렀다. 하지만 정권은 건재하다.

Q 당시 환멸이 컸고 세상이 달라질 거란 기대감도 적잖았지만 지금 보라. 회의감만 남았다.

A 사람들의 각성을 유도하는 게 사상가의 역할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 전체가 목도한 처참한 사태다. 6ㆍ25전쟁을 텔레비전으로 쳐다본 셈이라 생각한다. 그 기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에 깊게 남는다. 이번 역사 논쟁도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역사가 본질적인 진보를 이루는 데 이바지하리라 믿는다. 사상가들은 한 순간도 역사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우리나라를 몇 개 기업이 갖고 노는 것처럼 보이고 정권이 저열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지만, 반드시 우리 역사가 바른 길을 찾아갈 거란 믿음이 있다. 지식인들의 종교는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거시적인 걸 보고 역사의 정의와 정론을 바로잡기 위해 낙관을 갖고 끊임없는 자기 희생과 헌신을 보이면서 모범이 되는 게 사상가다.

Q 낙관의 근거가 뭔가.

A 역사란 건 항상 제자리로 돌아간다. 3ㆍ1 독립항쟁부터 4ㆍ19 혁명을 거쳐 6ㆍ10 항쟁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학생 세력이 주동이 돼 투쟁해온 역사적 사례가 없다. 우리가 유일하다. 거시적으로 우리 역사가 잘못 흘러오지 않았다. 진실된 걸 향해 우리는 왔다. 대학에서 강의해 보면 사회의식이 없는 젊은이가 없다.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위대한 국민을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끌고 가려 한단 것 자체가, 여야 모두 반성해야 할 문제다. 박 대통령이 국정 교란,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이슈들에만 집착하는 건 소아병적 발상이다.

Q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바로잡겠단 게 박 대통령의 의도란 분석이 많다.

A 내가 왜 생명력이 있겠나. 날 까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판 세력이 있어야만 박 전 대통령의 생명력도 지속되는 거다. 역사의 생명력을 죽이려는 시도가 딱하다.

Q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암울하다.

A 항상 경제ㆍ민생 문제를 핑계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거시적인 방향의 문화 자체를 말살시키는 방향으로 거꾸로 진행돼 온 게 (근현대) 우리 역사다. 젊은이들이 헬조선 상태로 느끼게끔 해놓고 우린 이득만 보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망한다. 제일 먼저 정신차려야 할 곳이 기업이다. 발등에 떨어진 문제가 산적한 상태다. 여태껏 관성 덕에 그럭저럭 굴러왔지만, 짓밟은 놈들 더 짓밟고 이념도 경직된 방향으로 더 나아가고 그러면 우린 더 굳건해진다? 개소리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했다. 헬조선 담론은 이런 위기에 대한 말초적 느낌이다. 훨씬 더 구조적으로 잘못돼 있는 거다. 권력자와 여당이 나서서 이걸 빨리 개선해야 하는데 기껏 한단 게 교과서 개혁이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뭐냐. 묻지 않을 수 없다.

Q 당장 이 국면에서 정치가 해야 할 게 뭔가. 역사가 저절로 옳게 가는 건 아닐 것 아닌가.

A 역사를 태클하는 사람들한텐 다양한 레벨이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사상가들은 사상가대로 태클해야 하고 작전이 달라야 한다. 또 그게 코디네이션 돼야 하고. 문제는 그런 택틱(작전)들의 철저성이 부족하단 거다. 내일을 위한 뚜렷하고 낙관적인 비전도 필요하다. 한데 이익에만 경도돼 있으니 국민들에게 희망을 못 준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그들 시대는 끝났다. 참신한 젊은이들이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아버지 관점에선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하게 살았으면 싶은데, 아방가르드한 애들이 내 말을 듣나.” 예술적 기질과 자유분방함은 도올 집안의 내력이다. 찡그린 표정이 익살스럽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섭렵의 내력… 분방하되 철저한

철학자와 한의학자, 극작가, 기자 등으로 도전을 거듭한 이력에다 도발적인 강연과 거침없는 화법으로 늘 이목을 끌어왔던 이가 도올이다. 일견 딜레탕트로 보일 정도의 분방함이다.

Q 섭렵의 내력이 화려하지만 의심도 생긴다. 광범과 심오가 함께 성취될 수 있는 가치인가.

A ‘한 우물을 깊게 파라’ 따위 통념을 되레 의심해야 한다. 깊게 파는 사람이 넓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건 내 진리가 아니다. 내 느낌을 통과해야 진리가 되는 거다. 그래서 모든 분야를 섭렵하려고 노력했다. 과학까지 포함해 문사철(文史哲)은 분리될 수 없다. 문ㆍ이과 분리는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난 그걸 거부하고 산 사람이다. 많은 학자들이 정확한 논리,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할 능력이 없는 건 공부가 부족해서다.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도올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6년, 교수로 부임한 지 햇수로 5년 만에 모교 강단을 떠났다. 교수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 시국 선언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Q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 아니었나.

A 인생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다. 내 몸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고 지금껏 건강을 유지하는 건 젊어서부터 질병 등으로 너무 고통스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극복해야 한다.

Q 고전을 가장 많이 만난 학자 중 하나 아닐까 싶다. 청년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을까.

A 아무리 고통스럽고 잘못된 듯 보이는 역사라 해도 함부로 투정할 수 없는 위대한 환경이 있다. 젊은이들이 너무 절망하거나 하지 말고, 제 미래는 자기가 창조한단 생각을 갖길 바란다. 인생ㆍ역사엔 고난도 필요하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문화가 진화할 거라 생각한다.

Q 대중과의 소통에 능란한 철학자로 꼽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엔 소극적이다.

A 내가 직접 활동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만큼 SNS에서 많이 회자되는 사람도 흔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난 네트워크를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사회에 맡겨두겠다.

부친과 달리 도올의 막내딸인 미루(34)씨는 SNS를 자기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 작가로 활동하며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그가 9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아랍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단 이유로 검문 당했단 내용이었다.

Q 따님도 유명하다.

A 나름대로 추구하는 게 있는 애 같다. 특이한 미모랄까 그런 게 서양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작품 활동만 하는 게 마뜩잖아 인류학이라든지 인생에서 조금 더 본질적인 준비를 하라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잔소리 하지만 애들이 내 말을 듣겠나(웃음).

Q 영락없는 한국 아버지다.

A 하지 말란 게 아니라 안전하게 살란 얘기를 하는 거여도 아방가르드한 애들이 들을 리가 없지. 믿음직스러운 건 미 프린스턴대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하고 컬럼비아대에서 희랍 예술 박사를 하나 더 한 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첫째지만 불안해 보이는 셋째가 더 유명하다(웃음). 둘째가 아들인데 한국에서 국악을 전공한 뒤 미국에서 영화음악을 하고 있다. 셋 다 저런 걸 보면 못말리는 예술적 기질들이 있나 보다(웃음).

Q 재능도 대물림되겠지만 분방함이나 그걸 가능케 하는 환경도 물려 내려간단 생각이 든다.

A 애들로 하여금 자율적 결단을 통해 살게 해줬고 그래서 자식ㆍ부모 간에 지금 알뜰한 정이 별로 없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머니가 또 날 그렇게 키우셨고 우리 집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개인 결단이랄까 그런 걸 중시한다. 그래서 또 뿔뿔이다, 뿔뿔이(웃음).

Q 학창 시절엔 어땠나.

A 고려대 다닐 때부터 한복 입고 다녔고 오토바이도 탔다. 좀 특이했다. 하지만 공부를 지독하게 했다. 혼자 공부한다고 동급생들이 삐딱하게 보더니 나중엔 결국 다 날 따라오더라.

Q 소설가 김훈과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 다녔다. 존재를 알고 있었나.

A 학교 땐 기억 못 한다. 하지만 일찍이 만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 1980년대에 가장 교류를 많이 한 것 같다. 도올 선생이야말로 소설 써야 할 사람이라고 김훈이 말했다.

도올과 김훈은 역사와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 한편은 낙관, 다른 편은 비관. 입장이 바뀌어 2007년 중앙일보 기자였던 도올이 김훈을 인터뷰한 적 있는데, 그때 김훈은 “한 국가의 목표가 도덕일 순 없다. 이익 추구에 실패하면 부도덕해질 뿐”이라고 말했다.

Q 기회가 되면 김훈과의 대담을 책으로 만들어봐도 좋겠다.

A 재미있을 거다. 김훈하고 나하고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세계적인 대담이 되겠지(웃음).

1986년 모교인 고려대 강단을 떠난 뒤 당시로선 유례 없는 ‘프로 저술가’로서의 길을 도올은 걷기 시작했다. 고희에 가까운 노구를 기어코 평행봉에 거꾸로 세우는 근성과 체력이야말로, 질병 등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온 그의 근 30년 야인 생활을 지탱해준 힘일 테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철학자 도올… 시대를 대변하다

Q 어떤 계기로 1960년대에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중국철학을 전공하겠단 마음을 먹었나.

A 젊은 날 우리 역사에 눈을 떴다. 그런데 공부하려고 보니 자료의 99% 이상이 한문이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한문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에 중국철학을 택한 거다. 40년 간 중국학에 매진했고 이젠 국학자로 살겠단 각오가 돼 있다. 앞으로 중국과 한국을 가교하면서 세계 평화를 만드는 데 공헌하는 학문을 할 생각이다. 이번 책이 인생의 전환 포인트다.

도올은 99년부터 EBS TV 동양고전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출연이 없다.

Q 장기 목표나 학문적 포부가 있다면.

A 중국 방송 측으로부터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고 좋은 프로가 있으면 나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목표는 위대한 철학서를 쓰는 거다. 칸트가 프랑스혁명 당시 바로 ‘순수이성비판’을 써 유럽 역사의 중심을 잡은 것처럼 지금 학자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본질적인 도전이다. 학자가 멋있는 연설 몇 번 했다고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다. 난 내 본령을 안다. 그래서 매일 지독하고 철저하게 공부한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타협하면 안 된다.

Q 세칭 ‘우리 시대 사상가’다. 부담스럽지 않나.

A 부담은 없다. 내가 산 시대를 나만큼 대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대변할 거다. 난 사상이란 게 고원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상가들도 역사 속에 살아있는 한 인간일 뿐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역시 자기들이 살았던 시대의 문제를 철저하게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살아있는 시대만 해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내 문제의식도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자기가 세워놓은 이념을 고집한다? 그거 웃기는 이야기다. 시대의 변화에 그 이념이 적응해야 하는 거다. 사상 역시 유연해야 한다.

수강 같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마당에 놓인 평행봉에 도올이 올랐다. 앞뒤로 몸을 몇 차례 흔들더니 말렸는데도 기어코 거꾸로 서 보였다. 꼿꼿한 그림자를 시대에 드리웠다.

선생 없는 시대, 훈장을 자처하는 도올이 평생반려인 흰색 두루마기 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눈(SNS)사람’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페이스북ㆍ트위터ㆍ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소셜 스타’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디자인

백종호 jongho@hankookilbo.com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ankookilbo.com

퍼블리싱

이태수 dlxotniocu@naver.com

속기 및 보조

정진호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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