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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하 수상한 세월에 서서

입력
2015.11.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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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엔 몇 번이나 잠이 깬다. 아기울음 때문이다. 비몽사몽간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할 일’에 매진한다. 우선 ‘응가’ 가득한 기저귀를 갈아준 다음 딸아이가 어미젖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이때 깜박 졸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은 아내가 하는 일이지만 때로 아이를 받아 안고 트림이 나올 때까지 등을 두드리거나 쓸어주는 일도 내 몫 중 하나이다.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딸아이는 금방 다시 잠이 든다. 새근거리며 편안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현실의 절감이 새벽 먼동처럼 피어오른다.

‘딸 바보’가 된지 50일도 채 되지 않았다. 동년배 친구들은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었거나 이미 성인이 될 정도로 성장한 자녀들을 둔 나이인데 이제야 처음 ‘아비’라는 직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 양극단의 상황도 치러내야만 했다. 아내의 곁에서 지켜본 출산 과정은 정말이지 경이롭기 그지없는 신비한 경험이자 한없이 기쁜 순간이었다.

그러나 호흡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딸아이는 생후 이틀 만에 종합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인큐베이터 속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상황에 갓 낳은 우리 아이가 놓인 것이다. 이후 하루 30분밖에 안 되는 면회시간을 위한 남은 23시간 30분의 흐름은 무척이나 더뎠다. 내내 속절없이 애만 끓이는 날들이 지나고, 이제 우리 ‘공주님’은 여느 또래 아이들 못지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초보 부모인 우리를 웃거나 울게 만든다. ‘부모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모가 된 후 육아휴직을 하고 온종일 아이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의 노고야말로 말할 것도 없지만 나 역시 일상의 변화가 가볍지는 않게 되었다.

우리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전해줄 수 있을까 신중하게 가늠하게 되면서 무엇보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온 세상이 가진 다양성의 가치를 전해주면서 누구 위에 군림하거나 빈곤, 인종, 이념 등의 차이에 따른 처지나 상황에 따라 함부로 낮추어 바라보지 않는 그런 시선을 갖도록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싶은 것이 이유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는 말은 언제부터 쓰게 되었을까. 예로부터 이치에 어긋나거나 도리에 걸맞지 않는 일들이 줄을 지을 때 흔히 쓴 말일진대 당시 하 수상한 일들이란 무엇이고 지금 현재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비해 과연 어느 정도 수위였을지 ‘부질 없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사람 살아가는 자리에 어떤 형태로든 욕구에 따른 경쟁이나 이념과 철학의 차이에서 나오는 괴리적인 상황들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작금의 이 나라 현실은 바라보기에 참으로 고통스럽기만 하다. 소시민의 일상은 끝없이 무너지고 정부와 자본이라는 권력집단은 교묘한 통제와 강요로 편을 가르고 과거로의 회귀에 여념이 없다. 어느새 서로를 살피던 전통양식은 사라져가고 비정상이 정상화 되어가는 꼴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것이 살 길이 되고 소통과 발언의 자리였던 ‘광장’에는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조각물들만이 드높이 솟아오른 채 절규가 난무하는 ‘통곡의 벽’이 되어가고 있다.

순간 번쩍 깬다. 너른 광장에 내 아이와 더불어 나아가 웃음 짓는 날을 단지 꿈으로만 품을 수는 없으니 다시 마음을 다져본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 해도 딸아이에게 낯부끄러운 친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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