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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뷰징' 퇴출밖에 답이 없다

입력
2015.11.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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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뷰징은 인터넷에 쓰레기를 쌓는 행위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뷰징은 인터넷에 쓰레기를 쌓는 행위다. 게티이미지뱅크

“IS 코엑스 폭파시도 첩보 입수, 코엑스에서 콘서트 여는 ‘소녀시대 유리의 치명적 볼륨감&아찔한 검은색 스타킹’”

지난달 말 한 인터넷 매체 사이트에 올라온 정체 모를 기사의 제목이다. 뭘까. 코엑스 폭파 시도와 소녀시대 유리, 치명적 볼륨감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식으로 이어지는 21세기판 의식의 흐름 기법인가.

뉴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지난달 25일 코엑스에 폭탄 테러가 있을지 모른다는 첩보가 접수돼 ‘코엑스 폭파’ 등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자 등장한 ‘어뷰징’ 기사다. 어뷰징(abusing)이란 사용자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눌러 검색하면 자사의 기사가 상위에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속이는 편법 행위를 말한다.

초창기 어뷰징은 똑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복사+붙여넣기’ 기법으로 수십, 수백 건씩 작성해 끊임없이 반복해 내보내는 방식이었다. 검색화면에서 기사가 최근 시간 순으로 노출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네이버가 이른바 ‘뉴스 클러스터링’을 시작하자 이런 단순작업이 무의미해졌다. 클러스터링이란 뉴스 검색화면에서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일일이 다 보여주지 않고 묶음으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같은 기사를 수백 건씩 보내봤자 하나로 묶여버리니 소용이 없다.

그러자 일부 언론사들은 좌절하지 않고 좀더 교묘하고 복잡한 어뷰징 기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난 것은 검색 키워드 반복 삽입이었다. 글의 시작에 반드시 키워드를 넣고 가급적 모든 문장에 키워드를 넣어 쓰며, 글 마지막에도 키워드를 여러 개 붙인다. 검색 알고리즘이 관련성이 높은 기사라고 판단하고 묶음 기사의 상단에 배치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근에는 아예 이런 키워드는 흰 글자로, 나머지 본문은 검은 글자로 입력해 겉으로는 키워드가 안 보이지만 알고리즘에는 노출되도록 하는 수법까지 나왔다. 과거 기사의 제목과 본문을 지우고 새 키워드를 넣은 기사로 바꾸어 재송신하는 이른바 ‘엎어치기’ 기법도 개발됐다. 같은 내용의 기사라 하더라도 가급적 처음 단독보도한 매체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알고리즘을 공략한 것이다.

검색 알고리즘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한데 묶는다는 점에 착안, 같은 키워드를 사용하되 아예 새로운 내용을 넣어 새로운 묶음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기법도 활용되고 있다. 키워드가 연예인일 경우 이 연예인의 과거사를 이유 없이 다시 쓰는 식이다.

12일 인터넷에서는 불안장애를 겪어 온 개그맨 정형돈의 방송활동 중단 소식이 큰 화제였다. 역시 어뷰징 기사가 속속 등장했고 곧 정형돈의 과거를 소재로 한 기사도 쏟아졌다. 이 중에는 심지어 ‘불안장애 정형돈 향한 안정환 건강 일침 “애는 어떻게 낳았냐”’라는 황당한 제목까지 있었다. 연초에 정형돈과 안정환이 주고받은 농담을 ‘불안장애 정형돈’이란 키워드에 연결시켜, 마치 안정환이 불안장애를 겪는 정형돈에게 면박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낚시 제목을 만든 것이다.

반대로 키워드가 연예인과 관련 없다면 사건과 무관한 연예인 이름을 넣어 엉터리 기사를 만든다. 맨 처음 소개한 코엑스 폭파-소녀시대 유리 기사 역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 같은 기사다.

어뷰징을 막기 위해 포털이 검색 알고리즘을 아무리 바꿔도 어뷰징 매체들은 무한 변신하며 쓰레기 기사를 내보낸다. 이를 막는 답은 확실한 처벌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인터넷 뉴스는 99%가 쓰레기로 채워지고 양질의 기사는 묻힐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유력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마저 어뷰징을 서슴없이 해 와 포털들이 적극적으로 제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사의 포털사이트 진입과 퇴출을 심사하는 포털제휴평가위원회가 발족해 관심을 받고 있다. 어뷰징 행위를 지속하는 언론사에 대해 퇴출까지 포함한 확실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위원회의 칼이 어디를 향할지, 얼마나 날카로울지 모두 주시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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