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단원고 72명의 꿋꿋한 수능… "하늘의 친구들아, 응원해줘"

알림

단원고 72명의 꿋꿋한 수능… "하늘의 친구들아, 응원해줘"

입력
2015.11.12 20:30
0 0
경기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서 가방에 세월호 뱃지를 단 한학생이 시험을 끝낸후 수험장에서 나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경기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서 가방에 세월호 뱃지를 단 한학생이 시험을 끝낸후 수험장에서 나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12일 오전 6시50분 경기 안산시 성안고교 정문 앞.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 온 선배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힘찬 응원 소리에 짙게 깔린 새벽 어둠이 걷혔다. ‘수능 대박 부곡고’ ‘동산고 선배님들 재수는 없는 거에요’등 안산지역 10여개 학교에서 원정 응원을 온 후배들의 구호가 허공을 갈랐다. 시끌벅적한 수능 아침 풍경과 달리 일단의 학생들은 유달리 조용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서 선배 250명을 하늘로 떠나 보낸 단원고 재학생들이었다. 1,2학년 학생 3명과 학부모 2명은 차분히 간식과 차를 준비하며 추위를 가르고 올 선배들을 기다렸다.

오전 7시25분, 마침내 단원고 첫 수험생인 김정훈(가명)군이 가방에 노란색 리본을 매고 정문 앞에 나타났다. 후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 “선배 파이팅! 쫄지 마세요”라며 따뜻한 차를 건넸다. 수험생들의 등교를 지켜본 생존 학생 어머니는 “다른 학교 학생들은 밝게 웃으며 당당하게 들어가는데 우리 아이는 무거운 표정이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시험을 마치면 꼭 안아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 남은 단원고 학생 72명은 이날 안산 지역 14개 고사장에서 일제히 수능을 치렀다. 3명은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들은 병원과 학교를 오가는 힘겨운 생활에도 먼저 간 친구들을 위해 또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힘을 냈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도 수능시험과 공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부모들은 “힘든 순간들을 버텨준 자녀들이 고맙다”고 했다.

아들, 딸이 시험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생존학생 부모들은 고되기만 했던 수험 준비 과정을 들려줬다. 전혜린 학생의 어머니는 “딸이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시험 기간에는 묽은 된장국만 먹는 징크스가 있다”며 “오늘 아침과 도시락도 모두 묽은 된장국만 준비했는데 제 실력을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민 학생의 아버지는 “미술을 전공한 딸이 사고 이후 1년간 미술을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그저 최선만 다했으면 한다”고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은 버겁기만 했다. 김정훈 학생의 어머니는 “악몽에 시달리는 아들이 잠을 자기 위해 새벽 2,3시까지 축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통에 오히려 체력을 고갈시켰다”며 “아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질 때마다 수험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고 전했다. 특혜 시비도 이들을 괴롭혔다. 전국 82개 대학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단원고 3학년 학생들에게 특례 입학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과도한 특혜’라고 악성 댓글을 달며 생존 학생들을 조롱했다. 고승희(가명) 학생의 어머니는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마련한 정책인데도 아이들만 필요 이상의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역경은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설세은(가명)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신경 써주기 위해 3개월 동안 휴직하고, 아이 아빠도 며칠 전부터 휴가를 내며 가족과 함께 했다”면서 “오늘 저녁에는 네 가족이 오붓이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전혜린 학생의 어머니는 “딸이 오늘은 친구들이 아닌 나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해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 켠에서 생존 학생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짓는 부모도 있었다.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스러진 참사 희생자 부모들이다. 고 이정훈(가명)군의 아버지는 “정훈이의 꿈은 아직 2학년 7반 교실에 남아 있다”며 “수능이 다가오니 아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울음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아이들이 당당히 대입 관문을 통과하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오후4시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고사장을 속속 빠져 나오는 무리 속에 김정훈군의 얼굴이 눈에 들어 왔다. 그는 어두웠던 아침 표정과 달리 “무사히 시험을 마쳐 뿌듯하고 홀가분하다. 장차 경찰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생존 학생의 부모들은 “많은 고통을 겪고 곧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따뜻이 보듬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간절히 요청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12일 오전 38지구 제14시험장 안산 원곡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12일 오전 38지구 제14시험장 안산 원곡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했다. 뉴시스
12일 경기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서 가방에 세월호 뱃지를 단 한 학부형이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12일 경기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서 가방에 세월호 뱃지를 단 한 학부형이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