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앙정부가 사회보장위원회 논의 결과라며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정비계획 지침을 각 지자체에 시달하면서 사회복지분야에 파란이 일었다.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 중 1차적으로 약 1,500개 사업을 적시하여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ㆍ중복이 있으니 정비 계획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협조하지 않는 지자체는 행정적으로 규제할 것임을 예고하였다.

정비대상 사업들은 지자체의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노숙인 거리 상담, 집수리 및 주거 지원, 자활근로나 취로사업, 장애인과 저소득층의 월동난방비 지원 등이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생활지원금 지원도 정비대상 사업에 포함됐다. 당연히 많은 지자체가 반발했고 권한쟁의 소송, 사회복지계와 시민단체의 규탄이 이어졌다.

복지부는 지자체 컨설팅을 통해 절감 예산을 사회복지에 재투자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사업은 폐지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복지사업 축소가 아니라고 발뺌한다. 11일 열린 사회보장위원회 회의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데도 국민들의 복지 체감은 낮다”면서 그 책임을 중앙정부와 별개로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복지제도의 비능률로 돌려 사보위를 통해 강력하게 사회보장 유사ㆍ중복사업 정비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사ㆍ중복사업 정비를 추진하는 중앙정부의 인식과 정책 방향은 국민의 복지 체감 증진이나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보위의 유사ㆍ중복성 판단은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지방정부의 복지제도를 형식적으로 재단하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중앙정부가 중복성 있다며 정비 대상 목록에 포함한 복지사업들은 대부분 중앙정부 복지사업의 대상 폭이 너무 제약되었거나 혹은 제공되는 수급의 양이 복지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보완’ 성격으로 645만명의 취약계층에게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활동 지원 시간만으로는 부족한 중증장애인에게 추가적으로 지원을 한다. 노숙인도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일부 시설이나 알코올 상담 프로그램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지자체가 거리 상담이나 응급 보호를 위한 현장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상당 부분을 지자체가 감당해 왔는데, 이런 사업을 ‘비효율’이라고 낙인 찍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중앙정부가 유사중복사업으로 정비하겠다는 지방정부의 복지예산은 9,900억 원으로 지난해 지방정부 총 예산 164조원의 0.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것이 지방재정을 파탄시키고 복지 예산 과중의 주 요인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어려움에 직면한 실제 원인은 지방재정 수입은 늘지 않는데 기초연금, 3~5세 누리과정을 포함한 무상보육 등 중앙정부가 감당해야 할 예산 부담을 떠안은 측면이 적지 않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복지 체감 증진과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복지 중복보다 ‘누락’ 문제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당연히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ㆍ정책 의지로 대응하기 때문에 복지 체감이 낮은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자체 복지사업 예산을 절감해 이것으로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편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의 생활지원금을 삭감하고, 80대 노인에게 추가 지원되는 몇 만원의 장수수당을 폐지하는 것은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 사회보장 심의조정 기능은 지자체 사업의 폐지ㆍ축소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됐듯 국민들에 대한 사회보장 증진 의무가 있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 복지사업을 확장ㆍ촉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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