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입 도전하는 2030 만학도 증가
직장생활 중, 사표 후 공부 병행… 뒤늦은 공부에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도
“더 나은, 안정적인 직장 위한 모험”… “괜한 생각” 후회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부모는 뒤쪽으로 빠져주세요.”

11일 오후1시 수학능력시험 예비소집이 열린 서울 양화중학교. 안내 교사의 한 마디에 박정화(33ㆍ가명)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나이에 수능이라니 어차피 정상은 아니잖아’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기야 최근까지 열두 살 연하 ‘띠동갑’ 대학생에게 구박 받으며 수학과외를 받던 생각을 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예비소집 후 서둘러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김씨는 내일 시험장에서 먹을 점심을 고민했다. 도시락은 힘들테니, 아무래도 햄버거라도 사 들고 와야겠다. 오늘도 막판 정리에 몰두할 어린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난다. 벌써 2년째 이어진 직장인과 수험생의 ‘이중생활’. 과연 올해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까.

의사로, 교사로… 늦깎이 수험생들의 행렬

올해 수능시험 응시자는 약 63만명. 대다수는 스무살 안팎의 고등학교 3학년 또는 재수, 삼수생들이다. 이들에게 수능은 성인의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중에는 또 다른 출발점에 선 이들도 적지 않다. 고교나 대학 졸업 후 10년 안팎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인생의 전환점에 선 늦깎이 수험생들이다. 이들은 의사나 한의사, 교사처럼 보다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보장하는 직업을 위해 모험을 건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공시(공무원시험)족’이나 ‘고시족’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보다 멀고 힘든 길을 택했다. 비슷한 또래가 아닌 학생 경쟁자들에 비해 입시 정보에 접근하기 힘들고 합격을 한다 해도 4~6년의 긴 대학생활을 다시 거쳐야 한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대학입시라는 ‘리셋 버튼’을 누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0대만 되도 퇴물.. 치킨집 사장은 싫다”

방송 PD가 꿈이었던 박정화씨는 2008년 한 케이블 방송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꿈은 이뤘지만 방송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박씨는 “언제부턴가 광고수익이 붙지 않은 프로그램은 제작할 엄두도 못 내게 됐다”고 말했다.

40대만 돼도 ‘퇴물’ 취급을 받는 선배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 결국 치킨집을 차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새 인생을 도모하기로 했다. 한의사를 지망한 건 문과생도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에 전망도 밝다고 봤다. 그런데 수능을 다시 보는 것 말고는 한의사가 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예전 한번 치렀던 시험이니 자신감은 있었다. 처음 도전했던 지난해 월 100만원 이상을 족집게 과외, 독서실, 온라인 강좌, EBS 교재비 등에 썼다. 확률과 이항분포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총명탕까지 지어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박씨는 “10수 끝에 한의사가 된 사람의 얘기가 실감이 갔다”며 “올해에도 안되면 내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승부를 봐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7시22분 이경재(가명ㆍ27)씨가 모바일 SNS에 마련된 온라인 수능 스터디방에 올린 기상 인증 사진.
“제대하니 앞길 막막… 인생 역전은 이 길 뿐”

이경재(가명ㆍ27)씨의 아침은 ‘인증샷’으로 시작된다. 오전 8시 전 책상이나 시계를 촬영해 모바일 SNS의 단체방에 올려야 한다. 종일 공부한 시간과 취침 시간도 공유한다. 벌금 없는 자율이지만 주 3회 규정을 어기면 강제퇴장을 당한다. 온라인 스터디의 방장인 이씨는 “현재 7명이 활동하고 있고, 많을 때는 20명까지 됐다”며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많은데 40대도 간혹 있다”고 전했다.

그의 목표는 의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어디든 빨리 붙는 곳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20대 중반 나이에 직업군인으로 전역했다. 따로 진로가 보장되는 것은 없었다. 일반 기업에 취직하자니 나이도 많은 편에 속했다. 공장과 막노동, 공인중개소, 웨이터, 대기업의 협력업체, 조선소 등 10여곳을 옮겨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음이 밀려왔다. 지금까지의 경력으로는 평생 다닐 만한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점이다.

그는 2년 뒤인 2018학년도 수능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씨는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서른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합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흔에 교사 돼도 손해 볼 건 없다”

중견 건설사 7년차 대리 김현철(가명ㆍ34)는 올해 9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김씨는 “3년 전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형편이라 결심이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오랜 시간 고민했던 만큼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회의를 해도 집중이 안되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의사는 뇌의 전두엽이 쉴 시간을 주지 않아서 생긴 증상이라고 했다. 무조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해 석 달 동안 새벽부터 출근해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이어진 강행군의 결과였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김씨는 “이렇게 소모되면서 정년 퇴직도 보장받지 못하느니 예전에 꿈이었던 교사가 되는 게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이가 걸리긴 했다. 2년 내에 합격을 하고 4년 간 학교를 다니면 빨라야 마흔에나 취업이 가능하다. 그는 “그래도 교사의 정년(62세)이 길고 20년 이상 근무 후 받는 연금을 감안하면 이 길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여전히 아쉬움도 남는다. 그는 “가끔 이전 직장이 6개월의 휴직만 보장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면 과연 이런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며 “근무 여건이 좋아져 다닐 만한 회사가 많아진다면 젊은이들이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주리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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