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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친일인명사전 보급’ 與도 동참해놓고…

입력
2015.11.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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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내달부터 학교 현장에 보급키로 했는데, 국정화 시국에 맞물려 찬반 논란의 한 축이 된 것입니다. 청와대, 교육부와 함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중심에 섰던 새누리당에서는 즉각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도서관 비치를 “반대한민국적, 반교육적”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갑자기 우리 사회의 논란의 축이 된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문연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한 인물들의 목록을 정리ㆍ분류해 2009년 출간한 사전입니다. 총 3권, 3,000여 쪽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은 을사조약을 전후한 시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일제식민통치와 제국주의 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주요 친일행각과 광복 이후의 행적 등을 담았습니다. 1948년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듬해 ‘친일파’들의 반격으로 와해된 지 61년만에 ‘친일파’에 대한 면면이 공개된 것입니다.

이 사전에 공개된 인물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등 유력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후손들의 저항이 거셌고, 출간 작업이 미뤄지는 등 진통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직접 후원에 나섰고 교수 1만인 지지선언 등도 잇따라,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민문연은 출간 당시 “세계 어디서도 역사적 과제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맞선 적은 없었다.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돼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과거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새삼 논란이 되는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오는 12월까지 관내 중학교 333개교와 고교 218개교에 배포키로 한다는 방침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보수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발한 진보진영(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됩니다)의 맞대응으로 비쳐지기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의 중고교 도서관 비치는 작년 서울시의회의 2105 예산에서 결정된 사항입니다. 당시 전부는 아니지만 서울시의회 새누리당 시의원들도 동참했던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것이 다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와중에 기사화되면서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비치 계획을 즉각 취소하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국가기관도 아니고 그 어떤 공인도 받지 않은 민족문제연구소의 편향된 친일인명사전을 우리 학생들에게 배포하려는 의도는 지극히 불순하고 의도적”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는 이어 “편향된 친일인명사전을 국민의 세금을 들여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 배포하는 행위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며 반(反)대한민국적이고, 반(反)교육적인 행위”라며 “이 같은 오해와 잘못된 인식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국가 발전 동력을 야금야금 갉아 먹게 만들 것”이라고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같은 민문연에 대한 현 집권층의 인식은 앞서 본보 기사(▶朴대통령, 전교조·민문연과 질긴 악연)에서도 짚은 바 있습니다. 신 대변인의 논평은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민문연에 대한 인식과 거의 일치합니다. ‘좌편향’된 단체에서 만든 친일인명사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골자입니다.

정부 여당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가뜩이나 반대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친일ㆍ독재 미화는 없다”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깃장이 튀어나왔다는 불안감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부여당이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중단을 촉구하는 모습은 마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수많은 역사학자, 교수, 교사, 학생들의 목소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 대변인의 논평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의 주장으로 살짝 바꿔봤습니다.

“단일한 역사를 강요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국민의 세금을 들여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 배포하는 행위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며 반(反)대한민국적이고, 반(反)교육적인 행위”, “역사교육에 대한 정부여당의 오해와 잘못된 인식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국가 발전 동력을 야금야금 갉아 먹게 만들 것”.

어떻습니까? 단어 몇 개 바꿨을 뿐인데 양쪽이 추구하고자 주장하는 방식은 흡사하다는 생각은 저 뿐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참! 친일인명사전의 중고교 학교 도서관 비치는 올해 사업으로 돼 있었는데 지금까지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보수성향의 단체의 반발 때문입니다. 이 관계자는 “지난 3월을 전후해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대’라는 보수단체에서 고교 100개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비치는 학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시교육청 입장에서는 학교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고민하다 보니 예산 집행(학교 도서관 비치)이 늦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보수단체의 학교에 대한 공격과 압박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들어왔던 내용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을 알리면서 했던 대국민담화의 일부를 전해봅니다.

“지난 2014년,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20여 곳의 학교는 특정 집단의 인신공격, 협박 등 집요한 외압 앞에 결국 선택을 철회했습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현장이 반민주적, 반사회적 행위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학교 현장을 반민주적, 반사회적인 정치ㆍ이념 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분명한 것은 학생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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