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춘풍예찬 (6) 한국적인 만큼이나 보편적인

마침내 한국의 대척점에서 신호가 왔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알기에 오태석 선생은 뿌리치지 못 한다. 동양에 이어 뉴욕, 런던의 객석까지 진미를 선사했던 터다. 이번에는 머나먼 칠레에서 열리는 산티아고 페스티벌이다. 바로 남미 최대의 공연제. 5년 전 목화의 무대를 알게 된 뒤 ‘짝사랑’(오 선생의 표현이다)해 온 주최측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참가를 요청해 왔다. “‘템페스트’를 찍어서 초청했더군요.” 그러잖아도 지난 2011년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먼저 팔 걷고 실무적인 일을 도와준 그가 드디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제 칠레의 세 주요 도시는 한국판 ‘템페스트’의 마술에 홀릴 전망이다.

관객을 가르치는 연극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객석에 감상과 해석의 주도권을 넘기는 연출 방식, 정면 시선이나 맨발 연기 등 목화가 고수해 온 어법을 적극적으로 평가해 준 결과겠죠.“ 국내의 연극 관습과 버성기는 그의 무대가 객관적으로 평가 받기 위해 외국의 비평이 필요하기도 했다는 현실적 필요와 맞물린 것이기도 했다. 목화레퍼토리컴퍼니의 해외 공연 기록이 우리 것에 대한 관습적 소비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논두렁 시선 등 목화 특유의 무대 언어가 방식이 서양에서도 효과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확인한 것이 지난 2011년 에딘버러에 공식 초청됐던 템페스트’였다. 특별상인 헤럴드앤절상까지 덤으로 따낸 그 무대는 헝가리와 이탈리아 등지의 무대에 잇달아 올랐다.내친 김에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라마마 극장을 달구며 생략과 비약의 보편성을 확인해 간 셈이다. “우리의 ‘템페스트’가 이번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주목 받으면서 노동요와 고유 악기 등 우리의 전통 문화가 현대성과 보편성을 만난 것이죠. 살아 있는 전통의 실체를 외국인들이 인지한 것이랄까요.”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템페스트’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목화레퍼토리컴퍼니는 최근 같은 연극으로 베이징까지 석권했다. 베이징에 있는 중극 최대의 연극 학교인 중앙희극학원에서 주최하는 국제 연극제의 5회 행사가 그 무대. 해외 공연 초청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그 자리에서 목화는 엿새 머물며 20여분의 쇼케이스 무대를 선보였다. ‘템페스트’ 중 태풍을 일으키는 장면, 세자의 지옥 체험, 결혼식 등 세 대목을 이어 붙여 선보인 그 무대에 호평이, 아닌게아니라 태풍처럼 쏟아졌다. “전통의 현대화와 함께 중국과 스페인을 능가하는 연극적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기억한다,

경연 형식으로 치러지는 대회에서 송영광, 윤민영, 이재연 등 세 단원은 대회 유일의 상인 연기상까지 석권했으니 말하자면 겹경사였다.

특히 한중일의 연극적 전통이라는 맥락에서 이번에 일군 성과가 예사롭지 않다. 살아 있는 전통이란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다. “중국과 일본은 전통 연희를 엄격하게 세습 체계로 묶어둬요. 북경오페라나 가부키가 대중, 특히 젊은 층과 유리된 나머지 고사 직전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죠.” 문제는 젊은 세대와 고유의 전통 문법을 적절한 언어로 통역해 줄 수 있는 현대 연극의 새 문법이라고 그는 짚었다.

목화의 첫 해외 공연은 1987년 일본의 도가 페스티벌 무대였다. 주최측이 ‘춘풍의 처’의 녹화 테이프를 보고 참가를 요청, 한국인으로서는 첫 참가 기록을 세우게 됐다. 명창 신영희가 기생으로, 북 연주에 박병천 등 두 대가가 특별 출연했고 정진각 한명구 등 극단 목화의 간판 배우들은 흐벅지게 연기했다.

이후 도쿄 미즈이(三井)페스티벌에 ‘태’로 참가, NHK TV에 전막이 고스란히 방영되는 기록도 세웠다. 마이바시(前橋) 시 승격 기념 페스티벌에서 ‘부자유친’이 초청됐고, 원자탄으로 실명한 교포를 그려 1993년 초연된 ‘아침 한 때 눈이나 비’가 일본에 초청되는 등 향후 10여년 간 거의 매년마다 일본은 그를 초청했다. 그에게 일본 연극은 무엇일까?

“일본의 연극은 친서구적 무대에 머물렀을 뿐, 서양의 연극을 내면화해 내지 못했어요. 일본의 몸짓으로 번역해 내지 못한, 겉치장에 머문 무대지요.” 서양 연극을 고스란히 옮긴, 이른바 신극을 답습하는 수준이라 규정하는 이유다, 그에 따르면 미학적으로는 노(能)와 가부키(歌舞伎) 등 일본의 전통 공연 양식과 서구 무대를 버무린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절충주의다. 무대 메커니즘과 자극적 볼거리에 의존할 뿐, 일본 연극에는 인간이 없다는 지적이다. 1994년을 끝으로 일본 공연은 없다.

'템페스트’에서 외국인들이 폭소로 화답하는 빗자루 대목.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연극의 보편성은 어떤 것인지, 다소 강파르게 물었다. “객석이 연극을 만들어 가는 무대죠. 라스베가스 쇼처럼 관객이 넋 놓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쉬고 있던 두뇌를 쓰게 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공연이에요. 즉흥성과 의외성의 이해를 위해서는 객석이 머리를 써야죠. 내가 올려놓은 재료들을 알아서 잡수시라는 거에요,” 연극의 교육적 효과 이전에 정신에 시동을 거는 계기로서의 연극이다,

그에 의하면 카타르시스 또한 객석이 주관적으로 머리를 써야 획득되는 무엇이다. 즉흥성과 의외성에 대한 이해는 그 전제 조건이다.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올려놔 준다. 이것을 알아서 잡수시라는 거에요.” 관객을 방임하는 것일까?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역설적 희구다. “연극의 교육적 효과 운운하기 앞서, 정신에 시동을 거는 거에요. 바로 이것이 이 시대에 공연이 할 수 있는 궁극이죠.” 바로 이걸, 볼거리를 만든다는 구실로 액자 속에 다 넣었다는 지적이다.

“판소리 완창 무대를 보세요. 부채와 수건만을 들고 혼자서 아홉 시간이죠. 그 같은 엄청난 생략이 가능한 것은 객석의 뇌를 운동시켜 (관객 스스로)그리게 하는 힘 덕분이고.”그의 무대는 그래서 매우 실전적인 전략을 두텁게 깔아두고 있다. 근현대사와 그 이전의 우리 역사를 잘 읽어내야 한다는 의도에 궁극적으로 복무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의 무대는 치열한 현실에 대한 답이다.

외국 관객들과 즉석 토론을 갖고 있는 오태석.

“한글, 팔만대장경, 발효 문화라는 엄청난 과학의 집성체를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이 지금 교과서 문제 등 해방 정국보다 더 격렬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치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읽어낼 때. 우리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죠.”세상이 버린 이데올로기 문제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는 이 곳은 그의 영원한 화두다. 그는 어느덧 실천안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미련스러움을 깨닫게 하거나, 그래도 건질 게 있다고 하거나, 빼어난 것만 골라 격려하는 연극을 만든다는 염원은, 관성처럼 그를 앞으로 밀어 부친다. “그걸 못 찾으니 이렇게 허둥대고 있잖아요. 그걸, 꼬리라도 잡으려 하니 백 살까지는 살아야지. 반백 년 넘게 해 오고 있는데 아직도 쩔쩔매니 한심하죠.”

내친 김에 정치권으로 넘어간 역사 논쟁을 보는 소회. “내가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얻게 해 주는 이치를 몰라요.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나만 생각하는 풍토 탓이죠. 두더지에게 밥을 던져주자, 그걸 먹으려고 땅을 헤치고 다니는 두더지 때문에 결국 땅이 숨쉬게 되는 이치를 몰라서 그래요.” ‘내 사랑 DMZ’가 그래서 나왔다. 생략과 비약의 무대는 실제 세계를 촘촘히 은유하고 있다.

장병욱 편집위원 aje@hankookilbo.com

사진=목화레퍼토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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