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9. 똥방패

● ‘똥방패’ 이정록 글, 강경수 그림

똥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 많다. 아이들은 ‘ㄸ’ 자만 들어도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똥 이야기를 들으면 웃음폭탄이 터지는 증세는 아동기 때 절정을 이루지만, 경우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똥 이야기 그림책도 많다. ‘강아지 똥’‘코끼리 똥’ ‘똥벼락’‘똥떡’‘똥호박’‘최고의 똥 선발대회’‘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하나같이 주옥같은 똥 그림책들이다. 웃기는 똥 이야기도 있고 가슴 뭉클한 똥 이야기도 있다.

‘똥방패’는 중견시인 이정록이 쓴 그림책이다. 그림책으로는 첫 작품인데도 ‘똥 그림책 명예의 전당’에 헌정할 만하다. (그는 ‘십 원짜리 똥탑’이라는 동화로 이미 똥 이야기 창작의 일가를 이뤘다. 저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를 알고 나면 포복절도할 것이다.) 참신한 유머와 능청스러운 입담이 일품이다. 그림작가 강경수의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림은 난무하는 똥을 구수하게 그려냈다.

“끄응차! 끄응차!” 똥구멍에서 막 나온 똥이 헌 똥을 밀어 올린다.

알에서 깨자마자 똥을 누는 똥벌레들의 이야기다. 똥구멍을 들어 올려 더럽게도 자기 몸 위에 똥을 눈다. 부지런히 쌓아올린 똥을 등에 지고 밥도 먹고 친구와 논다. 심지어는 비가 오면 똥이 씻겨 나가지 않게 풀잎 우산을 쓴다. 곤줄박이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제목 그대로 똥이 방패다. 그런데 똥방패를 지고 살아야 하는 처지를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투덜이 똥벌레가 한 마리 있었다.

밤새 내린 비에 투덜이 똥벌레의 똥이 자기도 모르게 씻겨 나간다. 곤줄박이 새의 아침밥이 될 판이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친구 똥벌레들이 인상을 쓰면서 다가온다. “방패를 벗으니 시원하니?” “더럽다고 함께 놀지도 않겠지?” 투덜이 똥벌레가 절규한다. “일부러 빗물 목욕 한 게 아니란 말이야!” 곤줄박이 새가 부리를 내리꽂는다.

똥방패가 벗겨진 투덜이 똥벌레를 향해 돌진하는 곤줄박이 새. 창비 제공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반전이 펼쳐진다. 친구 똥벌레들이 위기의 투덜이 똥벌레를 감싸 안고 자신들의 아침 똥을 누어준 것. 앞 페이지에선 똥을 누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느라 얼굴을 찡그린 것이었다나. 부리에 똥이 낀 곤줄박이는 “퉤퉤”하며 날아간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똥벌레는 괜히 투덜댄다. “내가 공중화장실이야?” 친구들은 말한다. “얼룩덜룩한 네 똥방패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야!” 까르르 웃던 똥벌레들은 똥방패를 벗고 땅 속으로 들어간다. “어른벌레가 되어 만나요”

생존을 위해 제 몸 위에 똥을 누는 벌레라니. 살아남기 위해 더러움을 견뎌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은유라고 생각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이런 곤충이 있단다. 백합긴가슴잎벌레의 애벌레다. 국립중앙과학관의 곤충정보에 따르면 백합긴가슴잎벌레의 유충은 백합 잎을 먹고 살며, 다른 종에 비해 크고 딱딱한 변을 등에 묻힌다. 시간이 지나면 똥 덩어리를 떨어뜨리고 땅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이 되어 다시 땅 위로 나온다. ‘다른 종에 비해 크고 딱딱한 변을 등에 묻힌다’라는 구절로 보아 똥방패를 애용하는 다른 애벌레가 또 있나보다. 웃기는 똥 이야기로 시작한 ‘똥방패’는 애타는 위기와 뭉클한 감동을 품은 생태 그림책이다. 백합긴가슴잎벌레 애벌레의 신기한 생태가 극적인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밥벌이를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똥벌레들은 남 같지가 않다. 세상이 더럽다 욕하지만 자신의 모습에도 점점 때가 탄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적당히 더러움과 타협해야 타인들과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다. “똥 덩어리를 벗어 버리고 싶어!”라고 투덜거리는 주인공 똥벌레에게 친구 똥벌레가 하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잡아먹히는 것보다 더러운 게 나아”

“잡아먹히는 것보다 더러운 게 나아” 대체로 다 그렇게들 산다. 창비 제공

곤줄박이 새에게 먹히기 일보직전에 친구 똥벌레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투덜이 똥벌레를 에워싸는 장면은 속사정을 알고 나면 배꼽 빠지게 웃긴 장면이다. 그러나 세상에 상처 받아 본 어른들에겐 가슴 서늘한 장면이기도 하다. 친구들의 ‘험악한 표정’은 그림책에선 반전을 위한 장치로 쓰였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선 냉혹한 현실이다. 친구 똥벌레들의 “방패를 벗으니 시원하니?”라는 말은, 어떤 사람들이 내뱉는 “혼자 깨끗한 척 하네”라는 비아냥을 연상시킨다.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는 사람, 조직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사람에겐 폭력이 가해지곤 한다.

그러나 똥벌레들이 똥방패를 벗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살기 위해 그토록 소중히 지고 다녀야 했던 똥방패를 어떤 시점이 되면 버려야 한다는 것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마지막 페이지엔 똥벌레들이 벗어던진 똥 무더기 위에 풀꽃이 피어나 있다. 똥벌레들을 보호해 주던 똥이 버려진 후에도 또 다른 생명을 틔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 자연의 생태라는 것이 놀랍다. 자연의 섭리라는 흔한 단어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그림책은 이중 독자, 이중 코드를 지녔다고 한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골라주고 읽어준다. 어린이와 부모는 그림책의 이중 독자다. 그림책의 주 독자는 어린이인데 그림책을 창작하는 작가는 어른이다. 하나의 코드는 어린이를 향하고 또 하나의 코드는 어른을 향한다.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른 둘 다 만족시킨다. ‘똥방패’는 어린이들에게 똥 이야기의 원초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며 곤충의 생태와 우정의 소중함도 알려준다. 어른들에겐 산다는 것의 더러움에서 위대함까지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함에 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머가 방패라는 것을.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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