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시부야(澁谷)구에서 학생 단체인 '실즈'(SEALDs)를 주축으로 안보 법률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집단자위권법이 통과된 지 한 달이 지나고도 도쿄 국회의사당 앞 반대집회에는 1만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안보법안에 대한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강행 처리하는 걸 지켜본 많은 시민들은 결국 국회를 바꿀 필요성에 절감하고 있다. 정가의 관심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야권공조 실현여부에 쏠리고 있다.

이슈를 선점해 주도하는 쪽은 일본공산당이다. ‘국민연합정부’연정구상을 들고 나왔다. 안보법 폐지와 아베 정권 타도에 공감하는 정당ㆍ단체ㆍ개인을 아우르는 거국적 연대를 성사시킨 뒤 선거국면에서 공조하는 시나리오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위원장은 다른 정당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당 강령에 있는 미일안보조약 폐기나 자위대 해산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한국정치에선 흔히 이뤄지는 야권연대가 급격한 정계개편이나 새판 짜기 경험이 별로 없는 일본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선진국 중에서 일본은 대표적인 다당제 국가다. 유럽에선 언어나 종교, 인종적 차이를 수렴하는 소수정당들이 공존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런 갈등구조가 없는 일본에서(물론 오키나와는 예외지만) 정당이 난립한 상황은 이례적이다. 이번 국회에만 8, 9개 정당과 정파가 원내에 진출해 있다. 이런 다당 구도가 거대한 자민당이 견제세력 없이 폭주하는 현실을 용인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 야당들은 ‘반 아베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 기회를 살려야 한다. 2009년 집권했으나 내부분열로 무너진 민주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념과 정책, 인물의 다양성을 하나의 울타리로 묶어내는 고난도 실험을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첩첩산중이다. 대여공동투쟁에서 공산당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내 노선투쟁이 촉발됐다. 안보법 통과 후 처음 치러진 미야기현 의회 선거에서 아베 정권에 가장 선명하게 반대했던 공산당이 자민당에 이은 제2당으로 도약했다. 중앙정치에서도 극우정치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유신당이 분열하면서 공산당은 민주당에 이어 제2야당으로 급부상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내 보수파가 “공산당과 함께하면서 우리 지지자만 떠났다”며 탈당카드까지 꺼내 들자,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공산당과 공조 논의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공산당이 포함된 연립정권 구상까지 가는 건 간단치 않은 문제다.

극단적 예를 들면 소속 의원이 입각할 경우 왕궁에 들어가 일 왕의 인증식을 거쳐야 하지만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일왕제(天皇)’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왕이 참석하는 국회 개원식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 야당은 바로 지금이 도쿄 국회의사당 앞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던 ‘민의’를 떠올려야 할 순간이다. 아베 정권은 초헌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공룡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5월 “역사수정주의적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겠다”며 자민당 내 온건소장파 20명이 ‘보수의 왕도’모임을 발족했지만 이후 총리관저의 눈치를 보면서 탈퇴 의원이 속출했다. 30명이 넘게 취지에 공감하더니 현재는 참여자가 한자리수로 떨어져 8월 이후 모임이 열리지 않았다.

일본의 야권은 ‘평화헌법 수호’나 ‘원전반대’등 대여투쟁의 명분을 단순화해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리의 마이크에 의지하지 않고 국회 내에서 자민당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능력이 가장 시급하다. 참의원 1명만 뽑는 32개 ‘1인 선거구’에 단일후보를 내는 원칙부터 합의해야 한다. 야당이 선거와 의회에서 여당과 경쟁하며 정치적 갈등이 관리되는 현상은 정당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다. 집권여당은 야당이 강력할 때 건강해진다. ‘힘없는 야당’때문에 일본 민주주의가 위기에 몰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야권연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도쿄=박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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