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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대사도 전쟁이다

입력
2015.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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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역사전쟁’의 시발점은 1978년부터 3년 동안 벌어진 상고사 파동이다. 민족주의로 무장한 재야 사학계는 기존 사학계를 식민사관론자라고 비난하며 공세에 나섰다. 당시 국정교과서가 단군개국론을 신화로 규정하는 등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했다며 개정을 요구했다.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 81년 국회에서 열린 초유의 고대사 청문회에서는 단군ㆍ기자조선의 실존, 고조선의 영토, 백제의 중국통치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단군신화가 역사적 사실로 편입되고, 한사군의 한반도 위치설이 삭제된 게 그때다. 하지만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과는 차이가 커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정부가 국정교과서에 상고사 등 고대사 기술을 강화한다고 밝혀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게 됐다. 중국의 동북공정 등 동북아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라지만 정작 국내에서부터 갈등과 분열이 불가피하다. 고대사를 둘러싼 학자들의 주류 비주류 간 논쟁은 학문적 논란을 넘어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재야 사학자들은 식민사학 정립의 한 축이었던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이병도의 제자들이 학계를 장악해 식민사학의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난한다. 반면 주류 학자들은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띤 일부 학자들이 검증도 안된 자극적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판한다.

▦ 근ㆍ현대사 못지 않은 갈등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고대사를 건드리는 데는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정치ㆍ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해온 논쟁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인다. 고대사가 늘어나는 만큼 근ㆍ현대사 분량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더 그럴 듯한 해석은 친일ㆍ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고대사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술할 경우 현 정부에 따라붙는‘친일’이미지를 희석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 정략적 차원에서 민족주의 프레임을 앞세우다 국수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학계에서 위서(僞書)로 평가 받는 ‘환단고기’의 한 구절인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문장을 인용한 걸 보면 걱정이 커진다. 군사정부 시절 국수주의 역사 서술이 크게 유행했다. 취약한 정통성 보완에 민족주의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고대사도 전쟁터가 될 것 같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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