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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 역사적 진실과 역사 해석의 다양성

입력
2015.11.0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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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재빠르게 확정고시까지 한 정부여당이나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과 시민사회 측 모두, 그들 주장의 주 논거는 교과서의 내용 문제에 있는 듯하다.

정부여당은 기존 검인정 체제 한국사 교과서들의 대다수가 소위 좌편향 사관에 따라 서술되었다는 그들 나름(?)의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맞서서 야당과 시민사회는 새로이 만들어질 국정 교과서는 친일 및 독재미화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 내용을 둘러싼 치열하면서도 수사적인 공방으로 인한 것인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더 본질적이고 학문적인 수준의 논거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역사 해석에서의 다양성 확보라는, 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본질과 관련된 논거이다. 즉,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는 학문이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이런 학문적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5일 오전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반대 하는 대학생 농성단이 서울 세종로 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5일 오전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반대 하는 대학생 농성단이 서울 세종로 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여기서 말하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식적인 선에서 간단히 생각해 본다면, 역사는 과거 그 자체일 뿐이고 그 진실은 이미 드러나 있거나 곧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를 다양하게 해석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특히 필자처럼 중고등학교 시절에 단일 국정 ‘국사 교과서’로 한국사를 공부했던 세대에게 이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지난날 배웠던 국사 교과서는 과거 한반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수많은 사실(史實)들이 정리된 집합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 ‘진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열심히 외워서 시험에 임하지 않았던가?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요즘 늦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 관광지인 내장산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매년 이 맘 때 쯤이면 수많은 인파가 이곳을 찾아 절정의 단풍을 만끽하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늦가을 내장산이라는 하나의 상(象)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을 이 상을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른 후에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집에 돌아와서 뽑아 본 사진들은 자기가 느꼈던 늦가을 내장산의 전체적인 정취를 담아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은 자신의 촬영 기술이나 카메라 기기 탓을 하게 되지만, 실상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사진들이 특정한 구도와 특정한 시각 아래에서 내장산 단풍의 일면만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면은 사진사의 능력에 따라서 많은 것을 보여주는, 또는 매우 통찰력 있는 일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진들도 여전히 현장에서 느꼈던 늦가을 내장산의 전체적인 정취를 드러내주기에는 부족하다. 우리의 사진사는 그 정취를 다시 직접 느끼기 위해 내년 가을의 내장산 여행을 기약할지도 모르겠다.

역사학이 분석 대상으로 하는 과거는 마치 우리의 사진사가 촬영 대상으로 삼은 늦가을 내장산과 같은 것이다. 사진사가 내장산의 전체적인 정취를 담아내고 그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역사가는 과거라는 대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진실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가는 사진사와 마찬가지로 그 전체적인 상을 재현해 낼 수는 없다. 역사가 역시 자신이 처해있는 위치,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관점에 따라서, 즉 특정한 시각과 구도 아래에서만 과거라는 대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가도 사진사처럼 실력에 따라 자신이 드러낸 일면을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 또는 더 통찰력 있는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역사가(또는 특정 역사가 집단)가 표현해낸 과거는 마치 특정 사진사나 그 집단이 담아낸 늦가을 내장산의 일면처럼 그 부분에만 해당 될 뿐이다.

만약 우리의 사진사가 늦가을 내장산에 다시는 가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전체적인 정취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내장산의 특정 일면만을 보여준 자신의 사진뿐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구도 및 시각에서 촬영하여 그 산의 다른 일면들을 잡아낸 사진들이 함께 필요할 것이다. 즉, 그 다양한 시각과 구도로 찍은 사진들을 펼쳐놓고 비교할 수 있을 때에만, 늦가을 내장산의 전체적인 정취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과거라는 시간적으로 이미 흘러가버린 대상은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먼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가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시각과 구도 아래에서 재현된 다양한 과거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논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비단 교과서 내용에만 관련된 문제는 아니다. 역사 연구와 교육에서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지 않는 것, 그것은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길을 막는 행위이다.

노경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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