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가 사과 비슷하게 생긴 선악과를 따먹어서 우리는 용서받을 일을 많이 하게 된 걸까요? 시인은 달리는 기차의 창 밖으로 사과를 가득 매단 나무들이 지나쳐가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바위처럼 의연하게 불행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들인 것도 맞고, 끊임없이 벌거숭이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은 낮게 떠 있는 헬리콥터 아래 풀들처럼 어지러이 흩날리죠.

그런데 시의 마지막 연이 참 이상합니다. 기차 복도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과 고해성사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죠. 죄가 있다 해도 용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시를 읽다 보면 시인에게 C.S.루이스의 말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용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이 용서할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순전한 기독교’) 용서는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는 일이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모두들 알지요. 고통과 상처와 분노로 얼룩진 우리의 생애가 기차 칸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처럼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면 모를까요.

그런데도 “그도 나를/ 용서하기를”이라는 시구는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는 많은데 죄지은 자는 나타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용서를 구하는 ‘나’의 자백을 들으며 우리는 안도합니다.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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