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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

입력
2015.1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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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지난 2일 당정회의를 갖고 내년부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정부와 여당은 지난 2일 당정회의를 갖고 내년부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힘이 있을 땐 더 그렇다.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는데 참아야 한다면 그건 고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 충동을 견디지 못하고 해서는 안될 일에 끝내 손을 댈 때, 결과는 심각한 왜곡과 퇴행으로 돌아온다. 개인보다 국가(정부)가 그럴 때 피해는 더 심하다.

# 정부와 여당이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를 인하한 걸 두고 ‘해선 안 될 일’이라고까지는 말 못하겠다. 가맹점수수료란 원래 수요공급의 탄력성이 거의 없어 100% 시장에만 맡길 수는 없다. 3년 주기로 수수료를 조정하도록 법에 규정돼있는 만큼, 초법적 관치도 아니다. 게다가 이번 조치로 혜택을 받는 쪽이 강남 대형음식점들이 아니라 동네 분식점 미용실 같은 영세가맹점들이다 보니 명분도 있다.

그렇다 해도 수수료율을 이 정도로까지(영세가맹점 1.5→0.8%, 중소가맹점 2.0→1.3%) 끌어내린 건 과잉이다. 정부는 영세한 가맹점주들이 연간 6,700억원 정도 이익을 볼 거라 얘기하는데, 그건 곧 카드사들의 순익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카드사들은 손실벌충을 위해 각종 소비자 서비스를 줄일 것이고(과거 인하 때도 그랬다), 결국은 윗돌과 아랫돌의 돌려막기가 반복될 터이다. 게다가 3년 뒤(2018년) 수수료조정 때엔 분명 조달금리가 올라가 있을 텐데, 차기 정부가 힘과 의욕 넘칠 임기 첫 해에 수수료를 올리는 ‘반서민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는 건 가격의 왜곡뿐. 이번 조치가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여당의 이기적 행동이자, 시장에 대한 힘의 남용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 연 66%에 달했던 대부업 최고금리는 2007년 이후 4차례 인하를 통해 34.9%까지 내려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성에 차지 않는지, 내년 1월 29.9%로 더 내릴 예정이다. 시장금리가 떨어졌으니까, 더구나 대부업 이용자가 대부분 영세서민들이니까 대부업체들의 고금리 횡포에서 좀 구제해줘야 한다는,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와 비슷한 논리다. 하지만 금리는 기본적으로 자금의 수요공급과 대출자의 신용도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다. 찍어 누르면 모두가 고루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시장에서 아예 튕겨져 나가게 된다. 게다가 한번 내리면 다시 올리기 어렵다. 정부는 가격을 손대는 손쉬운 방법 대신 힘들고 어렵더라도 서민들에게 금융혜택을 줄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2,000만원과 월급 20%를 청년희망펀드에 내놓은 뒤로 대기업과 금융기관까지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이한 건 법인 아닌 개인기부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250억원을 쾌척한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 200억원+임원 50억원 식이다. 정부가 대기업 ‘갹출’ 아닌 ‘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다 보니 이런 모양새가 된 것이다.

알고 보니 내 주변에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한 지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주로 금융기관 과 대기업 임원들이다. 자발적인 건 아니고 회사방침에 따라 그냥 월급에서 떼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가입하면 공무원들이 따르고, 다음으로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동참하는 건 너무도 익숙한 모금행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는 세금 이외엔 국민들로부터 돈을 거둬선 안 된다. 아무리 부자에게라도 그렇다.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금액까지 밝히며 가입하는 순간 청년희망펀드는 준조세가 되고 말았다.

국가가 절대로 나서지 말아야 할 영역으로, 난 시장과 의식(또는 학문)을 꼽겠다. 시장의 자율성과 생각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만 우리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어서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정부간섭으로 시장경제가 왜곡되는 경우였다. 이제 정부는 국민들의 의식과 관점까지 지배하려는, 그럼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또 한번의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이성철 국차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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