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반대 교사에겐 “시국선언은 정치중립 의무 위배, 중징계”
지지 표명 교사에겐 “소신 편 것… 표현의 자유”라고 둘러대
정치 중립 의무 없는 학생까지 단속 조짐

전북 남원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18)군은 지난 주 학교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1주일 가까이 국정화 반대 서명 운동을 벌여 학생 200명의 서명을 받았는데 담임 교사가 국정화 고시 입법예고 기한이 다가오자 다짜고짜 용지를 압수했기 때문이다. 김군이 항의하자 교사는 “교육부 지침도 있는데 괜한 정치 활동을 했다간 너희들이 불이익 받는다”고 훈계했다. 지난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내에서 국정화 반대 서명을 진행하려던 B양에 대해 학교 당국이 “징계하겠다”고 통보했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당국이‘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교육부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교원을 엄정 징계하겠다고 강조하자 일선 학교에서는 정치 중립의 의무가 없는 학생들까지 단속하고 나선 것이다.

4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 20일 동안 전국의 중ㆍ고교 6개 학교에서 국정화 반대 활동을 펼치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제재가 내려졌다. 전국의 중ㆍ고생 네트워크인‘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은 이 같은 사례를 취합해 학교의 제재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질의서를 지난 1일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17개 시ㆍ도 교육청의 학생교육인권센터에 제출했다.

교육 공무원이 아닌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규제하는 학교 당국의 조치는 부당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 제17조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며 “정치 활동을 이유로 한 징계 등의 조치는 잘못된 일”이라고 밝혔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제 21조에 ‘모든 국민에게 언론 출판 등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돼 있고 지자체 학생인권조례에도 학생들 표현의 자유가 보장 돼 있어 정치 활동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제재 조치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학교 현장의 비판을 잠재우려는 당국의 행태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서명한 교사들을 중징계 하겠다는 방침을 지난달 29일 이후 여러 차례 밝혔다. 교육기본법상 정치적 중립의 의무,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 금지 등을 위배했다는 것이 교육부가 주장하는 징계 근거다, 반면 국정화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집회를 연 교사들에 대해서는‘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다며 자가당착에 빠졌다.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자의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것은 교과서 발행 체제에 대한 교사들의 소신을 편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교사들의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 참여에 대해서는“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거론하는 등 당파성, 정파성을 띠기 때문에 정치 중립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 중립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교육부)의 소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각 시ㆍ도 교육감에게 권한이 있는 대안교재 발행에 대해서도 교육부는“정치 중립성에 어긋날 경우 제재한다”는 뜻을 밝히는 등 교육당국이 ‘교육 기본법상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내세워 교육현장의 비판 목소리에 재갈을 물릴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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