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은보다 더 귀하고 값지기는 하지만, 숟가락의 재질을 통해서 사회 계층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이러한 인지언어학적 분류의 출발점은 영어 관용 표현인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이다. 이 표현은 부와 특권을 지닌 채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는데, 아무튼 영어권에서는 금수저보다는 은수저란 표현이 먼저 생겨난 것이다.

이 표현은 18세기 초 영국에 꽤 널리 퍼져 쓰인 듯하다. 문헌상으로는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의 1719년 영어 번역본에서 최초로 나오며, 당시의 속담집에도 실려 있었다. 그 번역본의 거의 맨 끝 부분인 후편 73장에서 산초 판사가 그의 처 테레사에게 했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고, 또 모든 사람이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이 영어 번역은 지나친 의역에 해당한다. 최근의 영어 번역본에는 “사람은 가끔 갈고리는 있지만 베이컨이 없을 때가 있어”로 옮겨져 있다. 한편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는 관용 표현은 그 발상이 이솝 우화에서 생겨났으며 세르반테스와 동시대인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쓰였다.

최근 한국에는 금수저냐 은수저냐를 판정하는 빙고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20개나 25개 문항을 통상의 빙고 게임처럼 직사각형 표 안에 배열한 것이다. 흙수저 빙고 게임의 문항은 “냉동실 비닐 안에 든 뭔가가 많음”이라든가 “집에 장판 뜨거나 뜯긴 곳 있음” 혹은 “인터넷 쇼핑할 때 최저가 찾느라 시간 많이 투자함” 등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분류와 논쟁에 의하면 20억~30억 원 정도 이상의 자산을 가진 집을 가리켜 금수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 정도로는 금수저가 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다. 대개는 상위 1%를 금수저, 상위 3% 내외를 은수저라고 칭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영어 단어 스푼(spoon)의 어원은 ‘나무 숟가락’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저 ‘길고 평평한 나무 조각’이었다. 한편 금의 어원은 ‘빛나는 것’이었고, 은의 경우는 확실치는 않지만 어떤 이는 ‘은 재질의 정련된 금속’이 그 어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과 은을 원소 주기율표에서는 Au와 Ag로 표기하는데, 이는 각기 라틴어 ‘aurum’와 ‘argent’에서 생겨났다. 그러니까, 대항해 시대 유럽의 약탈자들이 남미 대륙에 있다고 상상한 ‘은으로 된 산맥’에서 나라 이름 아르헨티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다수 젊은 인터넷 유저들은 스스로를 ‘헬조선 흙수저’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들은 부모를 돈이나 자산으로만 평가하는 것이어서 너무 잔혹하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에 이런 말들은 사회 양극화, 저성장, 고령화, 청년 취업난,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 또 무엇보다 사회적 신분 상승의 완전 봉쇄 등과 결합된 사회 계층 구조를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분류적 표현에 따른다면 노무현과 이명박은 흙수저이기는 하지만 개룡남이다. 박근혜는 정치적인 금수저를, 또 새누리당의 김무성과 삼성의 이재용과 한진의 조현아는 경제적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현대 창업주 정주영은 동수저에,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금수저에 해당한다.

숟가락을 뜻하는 한자어 시(匙)가 음을 가리키는 시(是)와 의미 성분을 나타내는 비수(匕)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말인 십시일반이 쉽게 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극단적으로 고착된 계층 구조 자체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가슴을 찌를 것임에 틀림없다. 흙수저는 물론이고, 금수저와 은수저까지도 말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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