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끝난 정상회담 외교력 부재 탓
국정화 일본 과거 청산 더 어렵게 해
동북아 역사논쟁 악영향은 고려했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오전 청와대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정상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홍인기기자 hingik@hankookilbo.com

한일정상회담이 예상대로 빈손으로 끝났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를 가속화한다고 했지만 기약이 없다. 3년 반 만에 어렵게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가 고심 끝에 만들어낸 최대치가 그 정도다. 첫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허망함은 어쩔 수 없다.

아베 정부는 처음부터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대신 우리가 한일 양자관계에 몰두하고 있을 때 글로벌 외교에 힘을 쏟았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대를 쌓았다. 이런 외교 성과는 위안부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을 굽히지 않는 데 활용했다.

최근에는 외교 성과를 기반으로 되레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서 한국을 압박해왔다. 아예 한국을 제쳐두고 가겠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회담도 우리가 대화에 응하도록 미국의 옆구리를 찔러 성사시켰다. 결국 정상회담에 응하고도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받아내지 못한 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 실패다.

한일간 역사분쟁은 역사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양국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격화된 측면이 크다. 군사대국화를 통한 대중적 지지를 꾀한 아베 정부는 인접국가들과 역사분쟁, 영토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임기 말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인기몰이식 돌출행동이었다. 기조를 이어받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퇴로 없는 압박으로 지지율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정권 초에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보고가 올라갔으나 박 대통령이 거들떠 보지도 않자 누구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 정설처럼 돼있다.

지금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현재 한일관계로 볼 때 위안부문제가 쉽게 타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일본의 과거청산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분쟁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논리를 앞세워 국가의 역사개입을 정당화해왔다. 아베 총리는 일본 문부성에 애국주의를 옹호하는 교과서만을 승인하도록 지시했다. 위안부 문제를 축소, 삭제하거나 독도를 자국영토에 포함시킨 교과서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우리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일본 정부에 왜곡된 역사서술 수정을 요구하는 명분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장 극단적 형태로 국가개입을 정당화하면서 검인정을 유지하는 일본에 국가가 관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안부문제가 국제문제로 비화한 데는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와 학계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지 않았다면 고노담화 등 일본의 역사관련 3대 담화는 나올 수 없었다. 이제는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한일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의 역사개입을 비판할 수 있는 동력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일본의 교과서ㆍ역사관련 시민단체들이 “아베 정권에 교과서 국정화 구실을 줄 수 있다”며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런 이유다.

역사교과서 분야에서 한일 양국의 학계와 교육계, 시민단체는 뚜렷한 결실을 맺고 있다. 한중일 학자와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4년 간의 공동연구 끝에 ‘미래를 여는 역사’를 출판한 바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폭넓은 국제 연대활동도 물거품으로 만들게 된다. 한일 역사논쟁을 비롯해 중국의 동북공정 등 동북아 역사논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현 정권이 과연 이런 문제까지 심사숙고해 국정화를 결정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에 과거사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친일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자기모순이다. 박 대통령은 “친일 교과서가 나오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친일, 독재를 미화한 뉴라이트 교과서를 모범적인 교과서로 치켜세웠던 점에 비춰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일본은 지금 속으로 웃고 있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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