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두 번째 소설집 ‘목련정전’

소설가 최은미씨가 두 번째 소설집 '목련정전'을 펴냈다. 아홉 편의 단편에서 인간사의 괴로움을 번식의 공포를 통해 그렸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전창훈

무성하게 피어난 곰팡이나 자잘한 유충 같은 것들이 일으키는 공포가 있다. 꿈틀대는 생명력, 저 환영받지 못할 생명체가 쓸데 없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공간을 점령하고 종국엔 몸 속까지 들어가 일곱 개의 구멍으로 되뿜어져 나올 것 같은 공포다.

최은미 작가가 삶의 지옥을 그리는 주요한 도구는 균과 벌레다. 2008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등단해 두 번째 소설집 ‘목련정전’(문학과지성사)을 펴낸 최 작가는 아홉 편의 단편에서 원치 않는 번식이 빚어내는 비극의 장면을 가느다란 균사와 작은 벌레들을 연결해 화사한 풍경화로 그려낸다.

‘라라’에서 여섯 살 소녀 라라와 의붓언니 유리, 엄마 전나경이 함께 사는 아파트 꼭대기 층은 동화 라푼젤의 탑을 연상시킨다. 라푼젤처럼 허리까지 늘어뜨린 라라의 머리에는 이가 우글댄다. 엄마의 무관심 때문이다. 첫 결혼에 실패한 전나경은 이 남자 저 남자를 거쳐 라라 아빠를 만나 정착했다. 전나경 대신 라라를 돌보는 건 첫 남자 사이에서 낳은 딸 유리로, 라라의 머리칼에 살충제를 뿌리는 어설픈 방식으로나마 육아를 대신한다. 어느 날 유리는 라라가 식탁 모서리에 성기를 비비며 자위 행위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이를 들은 전나경은 눈에 불꽃을 틔우며 달려든다. “여섯 살짜리가 벌써부터 밝히면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래. 너 중학교 교복도 벗기 전에 임신하고 싶어? 다른 애들이 학원 찾아 다닐 때 낙태할 병원 찾으러 다닐래? 너 살인자 되는 거야.”

여섯 살 아이의 자위에서 살인자란 단어를 도출하는 비이성은, 전나경 자신의 삶에서 기인한다. 성욕-생식-출산으로 이뤄진 고리가 어떤 고통을 낳는지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쓰디쓴 경험 때문이다. 30일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이를 “생식기관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번식욕이 아닐까요. 인간의 숙명인 번식에 과도한 욕망이 개입하면서 싸움이나 전쟁 같은 온갖 괴로움이 파생되잖아요. 또 인간은 다른 생물체의 번식 행위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죠. 곰팡이의 번식이 위협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최 작가는 실제로 벌레와 균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고 했다. 반복된 번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도 못한 채 신나게 개체를 불리는 균들의 생태에선 인간사가 겹쳐진다. 작가는 곰팡이 균사에 성기를 점령당한 남자와 그 때문에 락스 신봉론자가 된 아내(‘창 너머 겨울’), 삶을 이기지 못하고 딸과 함께 죽으려고 올라간 산에서 노부부의 성행위를 보고 토하는 여자(‘근린’) 등을 통해 극단의 공포를 독자에게 전염시킨다.

등단 전 3년 간 불학연구소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최 작가의 소설엔 불경 속 지옥들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그 중 “담의 높이가 만 길에 이르고 벽 바깥으로 검은 벽이 만 겹이나 둘러쳐진” 아비지옥은 작가가 가장 공감하는 지옥의 모습이다. 번식의 아비지옥에 갇힌 인물들에게 작가가 들려준 건 고작 락스와 살충제뿐이다. “고통에서 벗어날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일정 정도 종교의 역할이죠. 문학의 몫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인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은미 소설집 '목련정전'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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