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도박 천국 된 마카오] (하) 원정도박계 검은 성공 신화

광주 송정리파 이원학(가명)씨 사례

'주먹' 역할하다 10년전 도박 진출, 형사처벌 받자 마카오행 선택

앵벌이들 회유해 한국 고객 유치… 삼합회 신임·자금지원에 승승장구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 기업인들 수백억대 카지노판에 끌어들여…

김태촌 양아들 3억 투자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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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최대 카지노가 들어선 씨티오브드림 호텔 전경. 호텔의 화려한 불빛과 달리 마카오 한인사회는 도박으로 인해 병들어 가고 있다. 마카오=박주희기자

지난 9월 22일 오전 인천공항 입국장.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이 키 190㎝가 넘는 한 사내에게 다가가 체포영장을 제시했다. 워낙 눈에 띄는 체격이라 굳이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마카오에서 홍콩을 거쳐 귀국한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됐다. 마카오 무대의 거의 모든 도박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는 정운호(50ㆍ구속기소)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 다수 기업인들을 수백억원대 마카오 카지노판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도 했다. 1990년대 조직폭력배 막내로 시작, 지금은 중국의 삼합회도 인정하는 카지노업계 거물이 된 광주 송정리파 출신 이원학(가명ㆍ39ㆍ수감)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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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회와도 결탁, 원정도박계의 검은 성공신화

해외 원정도박을 알선하고 카지노 측에서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롤링업자’는 1980년대 처음 등장했다. 1세대 롤링업자로는 송정리파 이진형(가명ㆍ52)씨가 꼽힌다. 이상규씨는 대선배 격인 이진형씨가 마카오에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뒤늦게 듣고 2009~2010년 무렵 마카오로 건너갔다. 그가 거물이 되는 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13년 6월 설립한 쉐어정킷(Share Junket)방인 ‘경성방’이 성장의 토대였다. 롤링업자가 판돈의 1.24%가량을 수수료로 챙기는 일반 정킷방(카지노 임대 사설 도박장)과는 달리, 쉐어정킷방은 최소 50억원, 최대 100억원 이상의 보증금을 카지노에 제공하고, 롤링업자는 고객이 잃은 돈의 약 40%를 챙긴다. 수익 규모가 큰 만큼 보증금 외에도 다량의 칩을 유통할 정도의 자금력도 필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 재력가나 삼합회 세력이 이씨를 신뢰해 자금을 지원하고 한국인 원정도박을 총괄하도록 발탁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마카오의 한인들은 이씨의 입지가 다른 쉐어정킷방인 ‘성내방’의 중국인 관리자와 ‘원 톱(1위)’을 다툴 정도로 두터웠다고 전한다. 중국인 카지노 업자들이 매출이 떨어지는 정킷방에 이씨를 보내 한국인 VIP 고객들을 유치토록 할 정도였다. 한 한인 에이전트(호객담당)는 “이씨는 초창기에 한국인 앵벌이(자산을 탕진한 도박중독자)들에게 500~1,000홍콩달러씩 용돈을 주며 선심을 베풀었다”며 “이들이 한국의 도박고객들을 이씨에 소개하고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경성방 설립 때 이씨의 사무실 개소식에는 현지 도박업계 한인들 대부분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씨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했다. 수수료 10억원을 받으면 돈을 잃은 고객에게 5억원을 돌려줄 만큼 평판에 신경을 썼고, 본인은 도박도 전혀 안 했다는 게 현지 인사들의 증언이다. 다른 한인 에이전트는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롤링업자들도 낮에는 바카라 같은 게임을 하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이씨는 그 대신 직원이나 동생들을 챙겼다”고 했다. 이씨를 조사한 한 검사는 “수사했던 조폭 중 신체조건이 가장 뛰어났는데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했다더라”라며 “외국 영화배우 같은 체격이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동네 깡패

이씨도 처음에는 ‘동네 건달’ 수준이었다. 그가 처음 법정에 선 계기는 1997년(당시 21세) ‘황룡강 폭행사건’이다. 광주 광산구 황룡강에서 조폭들이 한 남성을 물 속에 무릎 꿇린 채 회칼로 위협하던 모습이 순찰 중이던 경찰에 발견됐는데, 도박 빚 1,500만원을 갚지 않은 피해자가 인근 호텔 객실에 감금돼 2시간 동안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강가로 끌려갔던 것이다. 이씨는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됐으나 나중에 무죄로 풀려났다. ‘주먹’ 역할만 하던 그는 2005년부터 직접 ‘도박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기도박판을 총괄하는가 하면, 2007년에는 광주에서 변조된 ‘바다이야기’ 게임장을 운영해 단기간에 억대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게임기를 압수당하고 형사처벌까지 받자 그는 광주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도박장의 수익을 일찍 눈치챈 이씨가 새 무대로 삼은 곳은 마카오였다. 다른 조폭들이 ‘연예인 기획사 사기’나 ‘기업 인수합병 사기’로 활동반경을 넓히며 진화한 것과는 달랐다. 검찰 관계자는 “호남 기반 조폭들이 유흥업소 상권이 부실한 지역을 등지고 1970년대 이후 서울로 모여든 것과 유사한데, 서울 대신 마카오로 단독 진출한 게 특이점”이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파·학동파 등 국내 활동기반 좁아진 조폭들, 동남아 원정도박 사업 활개

국내 활동 기반 좁아진 조폭들의 동남아행

승승장구하던 이씨가 덜미를 잡힌 배경도 국내 조폭들의 활로 모색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범서방파’ 두목 고(故) 김태촌씨의 양아들 김모(42ㆍ수감)씨를 횡령 혐의로 수사하던 중, 그의 휴대폰에서 원정도박 관련 물증을 발견했다. 김씨가 조직관리 자금 마련을 위해 이씨에게 3억원을 투자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ㆍ금융범죄로 발을 넓히던 김씨가 이씨의 ‘성공 신화’를 보고 원정도박 사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씨의 뒤를 이은 국내 조폭들의 동남아 진출은 최근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청주 파라다이스파’와 범서방파 계열 ‘영산포파’는 이미 필리핀 카지노에 뿌리를 내렸고, ‘양은이파’ 계열 학동파도 마카오 카지노에 진출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보다 지능화된 형태의 원정도박이 행해지는 캄보디아ㆍ베트남도 국내 조폭들의 활동 무대다. 검찰 관계자는 “원정도박은 도박 빚 독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협박과 폭행이 수반돼 조폭이 관여하기 쉬운 구조”라며 “지금도 조폭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마카오=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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