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 이겼다고 국민통합 안 된다

전쟁 마무리는 패자 설득하는 노력

조급할수록 전선 에두르는 게 순리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2016년도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bo.com

싸움이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후 승리한 쪽이 패배한 상대를 어떻게 이끄느냐는 더욱 중요하다. 세력과 진영간의 경쟁에서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고,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계속 공존해야 할 상황이라면 ‘패자의 반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승자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반대했던 세력이 뭉쳐 상존한다면 전쟁은 끝난 게 아니고 진행형이다. 승리의 목표를 지향하며 승자의 논리만으로 전체를 이끌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를 남겼다. 명성을 높이고 재능을 뽐내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살펴보면, 나라의 중심이었던 주군 유비가 사망하여 자신이 궁궐을 비우기 어려운데다 주변국들과의 대립 속에서 언제 어느 쪽의 압박을 받을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남쪽 멀리까지 원정을 나와 있었다. 심리적으로 조급하고 물질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공명은 적장을 생포한 뒤 바로 전쟁의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여유’를 부렸다.

첫 전투 이후 ‘금(擒)과 종(縱)’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전력은 팽팽해졌다. 적장의 아우가 연합하여 달려든 적도 있었고, 형의 후원으로 함께 재기를 노리기도 했다. 적장은 전투에 패할 때마다 자신의 실수라거나 만약에 이랬다면 이길 수 있었다는 식으로 항변했다. 부하들과 그를 따르던 국민들도 그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일곱 번째 잡혀왔을 때야 비로소 부하들과 국민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느꼈고, 모두가 진정으로 동행하게 됐다. 시급히 마무리해야 할 전쟁이었기에 오히려 여유와 설득을 앞세웠다.

요즘 새삼 칠종칠금의 리더십을 떠올린다. 여유와 설득을 앞세우기는커녕 매사를 단숨에 해결하기 위해 일방적이고 직접적인 명령과 지시만이 있을 뿐이다. 눈앞의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전투를 잉태시키고 있다. 비밀과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불복과 거부는 더욱 단단해진다. ‘승자의 노력’이 ‘패자의 반대’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이미 전쟁이 됐다. 정부여당과 야당,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논쟁 차원을 넘었다. 개인 사이에서도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다투다 눈을 흘기고 적개심을 갖고 헤어지는 경우가 일상사로 일어난다. 어느 특출한 정치고수가 있어 이러한 상황을 유도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러한 결과로 치닫고 있다. 의도했건 않았건, 전쟁은 하루빨리 멈춰져야 한다. 전투에서 누가 승리한다고 해도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자칫 나라가 요동칠 수도 있다.

선거에서 51%와 49%의 결과는 명백하고 엄연하게 51%의 승리다. 하지만 51%가 승리를 앞세워 49%를 무작정 끌고 가서는 안 되며,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선거는 우리 편과 상대 편의 숫자로 결정되지만 이후 양쪽을 함께 이끌고 가는 데는 다수의 동조보다 소수의 협력이 더 필요하다. 셋 중에 하나, 넷 중에 하나가 저항하더라도 그 소수를 설득하지 않고서는 동행이 불가능하다. 지금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찬성과 반대가 팽팽한 상황이고, 갈수록 반대여론이 우세해지는 추세다. 설사 찬성여론이 우세해진다 하더라도 국정화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다시 공명의 얘기다. 첫 전투에서 승리하여 적장을 포박했다 풀어주자 측근들은 더욱 밀어붙여 전쟁을 쉽게 끝낼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했다. 공명은 그냥 밀어붙이자고 주장한 측근들을 경계했다.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를 생각하기보다 목전의 사사로운 편안함만 추구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전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성벽에서 적을 무찌르는 데는 짧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성내에서 민심을 얻어 함께 동행하는 데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수백 년 전 중국 소설가의 혜안이 돋보인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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