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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관계와 소통

입력
2015.10.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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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통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화, 눈빛, 몸짓, 글 등 온갖 방법으로 서로에게 본인의 마음과 의견을 전달하고 전달 받음으로써 소통이 원활하게 되어 관계가 시작된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이 관계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게 하지 못해 멀어지기도 한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다. 대화가 있어야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몽골에선 나의 모국어 몽골어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었고 어떤 관계든 쉽게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순간부터 소통에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아 집에서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을 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생활 용어를 익혀서 짧은 문장으로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말한 긴 문장을 알아듣고 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야속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빠르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원했다. 외모가 한국인과 흡사하게 생겨서인지 혼자 다니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 약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타국 생활인 만큼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적응을 해가야 했지만 다가가기 어려웠다. 내 한국어 발음이 안 좋다고 누가 놀릴까 봐, 내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봐, 남이 하는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까 봐 두려울 때가 많았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외국인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 두 마디만 해도 ‘어, 한국말 엄청 잘한다, 대단하다’라고 반겨주는데 나 같은 사람이 문장을 구성해서 이야기를 하면 한두 개의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꼭 지적해서 기를 죽인다. 얼마나 미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말을 잘 안 하고 돌아다니기만 하거나 고향 친구들하고만 다녔다. 그렇게 다녔어도 소통이 잘 안 돼서 생긴 어려움이 많았다.

언젠가 한번은 여행 갈 일이 생겨 시장에 있는 가게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한 적이 있다. 그 가게에선 카메라를 사면 스프레이를 함께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스프레이의 정체를 알고 싶었으나 표기돼 있는 한글을 아무리 봐도 어디에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일회용 카메라랑 관련된 것 같아 여행 가면서 스프레이를 챙겼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친구가 가게에서 준 스프레이를 왜 사용하지 않는지 물었다. 어떻게 사용한지 모른다고 답했다. 친구는 그래도 카메라랑 같이 줬으니 안 쓰면 안 된다고 했다. 무엇에 쓰는 것인지 열심히 논의한 결과 카메라 렌즈에 뿌리기로 했다. 카메라 렌즈에 스프레이를 절반 뿌린 뒤 사진을 찍으면서 엄청난 효과를 기대했다. 집에 오는 길에 사진관에 맡기고 왔다. 다음 날 사진을 받아보니 나온 게 네댓 장뿐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카메라에 뿌린 스프레이는 자동차 도색용 스프레이였던 것이다. 지금 와서 웃을 일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났던지.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는데 왜 자동차용 스프레이를 줬는지 그 직원을 원망했다. 그 동네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도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일부러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뒤로 다시는 그 가게에 안 갔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은 그 당시 성실하게 이벤트 중인 스프레이를 우리에게 줬다. 우리가 그 물건이 뭔지 왜 주는지 물어봤다면, 가게 직원이 우리가 알아듣도록 몇 마디만 설명을 해줬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가 소통을 안 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 일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약간 서툴더라도 진실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소통이 안 되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를 풀지 않으면 갈등이 생겨 지속적인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점점 다문화시대가 되어가는 만큼 말로 하는 것보다 마음을 먼저 열어 자유롭게 소통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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