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춘풍예찬(5) 목화레터토리컴퍼니 오태석

/2015-10-17(한국일보)’백마강 달밤에’
/2015-10-17(한국일보) ‘템페스트’
/2015-10-17(한국일보) ‘내 사랑 DMZ’

‘고향과도 같은 아늑한 터전’에로의 회귀가 철학자 하이데거의 꿈만은 아닐 것이다. 오태석씨가 극단 목화레터토리컴퍼니의 극장에 고향 충남 서천에 깃든 터전의 원래 이름(아룽구지)을 붙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적어도 그에게 고향이란 “굿 보러 가자”면 우선 신명부터 나던 소싯적 추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기억 저장소였다. 거기를 풍요롬게 한 요체가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해 한낱 미물들까지 포섭하는 애니미즘의 세계를 응축하는 마당으로서의 굿판이었다. 그 연장선상에 그의 연극, 다시 말해 오태석식 볼거리가 유추된다.

온갖 살상 도구로부터 비무장 지대를 건져 올린 ‘내사랑 DMZ’가 그렇다. 무대 테두리에 무심히 걸어둔 조상들의 생활 소품들은, 재기발랄한 동물들의 낙원으로 변한 DMZ를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폭력적 사물인 땅굴은 길짐승들이 깃드는 오밀조밀한 공간으로 되살아 났다

그는 “무속의 힘으로 삶의 폭을 넓히고 삶의 결을 살렸던 조상의 지혜”를 보여주고 싶었다.무당의 제의를 통한 소망의 실현, 삶에서의 위로 등을 생략과 비약의 마술로 실현시켰던 것이다. 그 위에는 본원적으로 우리의 전통적 세계관이 넘실대고 있었다. “우리에게 굿판은 삶의 윤기를 더해주던 일상이었죠. 3년 동안 죽음을 마주보던 민족이에요, 우리가. 즉 현실의 산법으로는 불가능한, 허구의 시간이 갖는 힘의 구조를 무대 속으로 끌어 온 거죠.”바로 자신의 연출 작업이다.

그를 가리켜 아예 “본의 아니게 무당 노릇 많이 했다”고 눙친다. 제사 때 흠향의 수순이 망자가 산 자로 대접 받는 시간이듯, 무당의 몸짓이 일년 대소사로 확산되며 나아가 제의의 틀에서조차 자유로워지면서, 그것은 곧 연극이라는 지평으로 이어진 것이다, 오씨는 “그것이 식민지 이후 답답한 세상 살아 온 한국 사람들에게 훌훌 터는 재미를 준다”며 “연역하고 치장하는 주체를 객석으로 넘긴 것이 바로 의자왕의 환생을 전제로 한 ‘백마강 달밤에’”라고 말했다. 실제로 굿의 양식을 차용한 ‘오구 ? 죽음의 형식’을 연출한 이윤택씨는 일찍이 오씨의 ‘춘풍의 처’가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한편 그 같은 연장선에서 최근 서양쪽의 주목을 받은‘템페스트’는 오태석 연극 어법의 세계성을 확인케 한 계기였다. 지난 2011년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돼 헤럴드엔젤상을 수상하더니 헝가리와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호평 받은 연극이었다. 가락국의 8대 왕인 지지왕, 신라의 20대 자비왕, 무속 신앙의 액막이 인형인 제웅 등으로 등장 인물이 변신한 것은 물론 셰익스피어극의 내재적 운율을 한국화했다. 최근 맨해튼의 라마마극장에서 이탈리아. 한국 극단이 각각 해석한 무대에 올리는 자리까지 이 작품은 그에게 또 다른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매듭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흐름의 주체로서의 관객, 즉 능동적 객석을 전제로 한 무대였다”고 그는 기억한다. 6할은 관객이 작동시키는 무대였다는 그의 회고는 외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자신감과 통한다. 그는 “객석이 구사하고 색칠하는 언어가 관건”이라며 “셰익스피어도 이 시대에 연극을 했다면 그런 식으로 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3 - 4, 4 - 4조를 이용한 붙임의 방식이다. 빗자루, 키, 톱 등 가장 한국적인 소도구만 등장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런 식의 연극을 서양 사람들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그는 바란다. 이 대목, 그는 방점을 찍는다. “시간이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3 - 4, 4 - 4조로 만들고 싶다”는 과격한(?) 계획으로.

승산은 충분하다. “이 시대의 발달한 기술력에 의한 무대 메커니즘과을 이용해 생략과 비약을 보다 그럴싸 하게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갈은 극소화시키는 것, 여러 재료를 과감히 무대로 끌어 오는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것은 ‘연극적 발상’이고 그것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경험치다.

점점 더 보편화 되어 가는 논두렁 시선이라는 오태석식 문법을 보자. 중요한 대화를 하는데 정작 대화의 당사자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짐짓 딴전을 부리며 툭툭 내던지듯 말하는 방식이다. 몰리에르의 ‘스카펭의 간계’를 번안한 1971년의 ‘쇠뚝이 놀이’에서 선보였던 그 기법은 이후 유덕형 등이 오태석의 ‘태’와 ‘초분’을 연출하며 적극 도입, 눈에 익게 되었다. 그렇게 주어진 새 연극 어법의 가능성은 결국 ‘춘풍의 처’에서 완성된 것.

예를 들어보자. 중장년 가장이 회사서 퇴출당했다. 때마침 한창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나이의 자식들에게 공부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어렵사리 말해야만 한다. 목화의 배우들은 그렇듯 서로에게 힘든 현실을 이야기 해야 하는, 차라리 한숨 같은 대화는 먼산 보듯 뇌까린다. 그 먼산 보는 시선의 끝은 현실 무대에서 곧 관객이다. 서양식 화법이라면 서로 노려보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파국 대목을 연상해 보라.

크게 보아 동양의 볼거리 문법을 자기 방식으로 환원한 것. 중국의 경극, 일본의 노?가부키, 인도의 카타칼리 등 동양의 전통 연극에서 두루 확인되는 객석과의 소통법을 결과론적으로 잇는다. 그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서양식 (액자) 무대는 정면으로 관객을 보지 않는다. 나는 그게 답답했다”고 돌이켰다.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라!

그 같은 대화 방식이 서양에서도 효과적으로 통한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확인된 것이 에든버러의 쾌거였던 것이다. 장병욱 편집위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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