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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호와 박멸 사이

입력
2015.10.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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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도시에는 까마귀가 유난히 흔하다. 공원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열면 어느새 근처 나무 위로 날아오고, 잠시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음식물을 채서 달아난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거무칙칙하게만 여겼던 깃털은 햇빛 각도에 따라 온갖 색깔로 빛나고, 커다란 덩치와 부리가 맹금류 못잖게 늠름하다. 먹이를 찾으러 뒷골목 쓰레기통을 헤집고, 번식기에는 둥지 가까이 오는 행인을 공격한다. 무엇보다 개체수가 급증, 2000년부터 전국적 개체수 조절이 행해지고 있다.

▦ 음식물 쓰레기 배출 방법을 바꿔 까마귀의 먹이활동을 차단하고, 둥지를 부수어 번식을 억제하고, 덫으로 잡아 소각하는 등의 방법이다. 예로부터 까마귀를 신령한 존재로 여겨온 전통과도 맞지 않는 데다, 까마귀의 도심 진출이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의 결과라는 점에서 동물보호단체 등의 항의가 잇따른다. 그러나 연유가 어떻든, 성가신 존재의 개체수 조절은 불가피하다는 게 다수의 의사다. 길냥이(길거리 고양이) 중성화 수술, 야생조수 요리 권장 등의 자치행정에 대한 주민 다수의 지지도 같은 맥락이다.

▦ 2020년까지 독극물이나 덫으로 200만 마리의 길냥이를 줄이겠다는 호주 환경부의 계획을 둘러싼 논란은 한결 극적이다. 국내외 동물보호단체의 잇따른 항의에도 호주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긴귀주머니박쥐와 발톱꼬리와라비, 큰귀캥거루쥐 등 호주 고유종 28종이 길냥이 탓에 멸종했다니 길냥이 보호 주장이 무색해진다. ‘동물보호를 위한 동물도살’과 맞닥뜨리는 순간 절대적 가치처럼 여겨져 온 동물보호주장이 상대화, ‘보호해야 할 가치’의 경중을 따질 수밖에 없다.

▦ ‘TV 동물농장’을 즐겨본다. 유기된 동물의 딱한 처지에 안타까워하다가 동물구조대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길에서 유기동물을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특히 번식기의 길냥이들이 밤에 내지르는 온갖 괴성은 혐오스럽다. 아끼던 반려동물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의 변덕만 원망할 게 아니다. 보호와 박멸(撲滅) 사이에서 체계적 유기동물 대책을 찾아야 한다. 찬반 논란은 좋지만 특정 태도를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한 옹호ㆍ혐오 논란으로 이어가는 것은 금물이다. 길냥이가 싫다고 ‘캣맘’까지 미워하는 것은 민주시민에 어울리는 자세가 아니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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