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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가을에 만난 사람

입력
2015.10.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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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깊다. 만물은 무르익어가는 소리로 아우성이고 초를 다투던 세상살이도 왠지 모를 기운 탓에 한결 허둥거림이 덜하다. 넷 중 가장 여유로운 몸가짐이 가능하다 싶을 때가 바로 이 계절, 가을이지 않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부쩍 얕아진 요즘이지만, 이맘때가 되면 일부러라도 타인의 삶을 먼저 살피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신에게만 몰입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일상과 호흡들에 잠깐이나마 집중하는 시선을 건네는 것이 그리 헛된 일은 아니다. 그 동안 소식이 뜸했거나 혹여 다툼이 있던 지인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는 것도 좋고 설령 인연이 없는 이들이라 할지언정 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라면 서로 관심을 주거나 받는 일이 그다지 얼굴 붉힐 일 또한 아닐 터이다. 잠깐이지만 햇살 하나만으로도 너그러움이 일렁이는 계절 아닌가. 가을은 다른 이의 삶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살피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사진수업의 일환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진즉부터 그의 사진들에 공감을 해오던 터라 한번쯤 그의 인생항로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었다. 고단한 일상을 지닌 이들의 ‘옆’에 늘 머물고 있는 그를 설득해 잠시나마 짬을 내달라며 어렵게 설득해 낸 자리였다.

그는 높낮이 없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삶과 사진작업이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 또한 어떤 가치를 찾아 지금의 길을 걷고 있는지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전업 사진가로서 삶과 사진이 다를 바가 없을 진데 굳이 연계성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구현되는 그의 작업 방식이 대상과 깊은 일체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현장 속에서 그는 완결이라는 개념을 거의 정하지 않은 채 아주 긴 호흡으로 매달리고 몰입한다. 그것도 한둘도 아닌 여러 군데나 된다. 끝이 없는 현재진행형이 그의 작업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 중 하나가 지난 2010년 출간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너희는 고립되었다’이다. 이 사진집은 그가 6년여의 시간을 들여 불법으로 강제해고조치 된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복직을 위한 그들의 투쟁이 단지 몸부림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굳은 의지라는 것을 온몸으로 담아낸 결과물이다. 더불어 지금도 그는 세월호, 강정마을, 대추리, 밀양, 4대강 공사지역을 비롯해 고공농성에 나선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유성기업의 해고노동자들 등 여러 강제된 원인으로 인해 사회적 박탈감에 빠져있는 이들의 현장 속을 쉼 없이 찾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옆에 있기 위해 사진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진득하게 이어지고 있는 그의 걸음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기만 했다. 그를 통해 여전히 공감의 연대가 필요한 이들이 이 사회의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 더욱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누구든 이 청명한 가을 햇살 아래 서러워 흐느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도 저절로 솟구친다.

아! 언젠가 모두가 함께 웃는 날이 오면 들로 산으로 풍경사진이나 찍으러 다니겠다는 이 멋진 사진가의 이름은 ‘정택용’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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