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배우로 제2의 전성기... "9년 공백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 그저 고맙다"

이경영은 "촬영장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며 "촬영 끝낸 뒤 집으로 가기 싫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최근 출연작만 열거해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올해에만 영화 ‘허삼관’과 ‘소수의견’ ‘은밀한 유혹’ ‘협녀, 칼의 기억’ ‘암살’ ‘뷰티인사이드’ ‘치외법권’ ‘서부전선’이 개봉했다. 한국영화를 보면 그의 얼굴과 마주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가 상영되지 않은 날을 꼽기 어려울 정도다. 안방에서도 그의 얼굴은 익숙하다. 지난해 tvN의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최 전무를 연기하며 눈길을 잡은 데 이어 지금은 JTBC 재난 드라마 ‘디데이’에서 야망으로 뭉친 병원장 박건을 맡고 있다. 화면 곳곳을 가로지르며 대중과 만나고 있는 배우 이경영을 지난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들들 끓던 삶의 여름을 거쳐 가을에 진입한 그의 등 뒤로 옅은 10월 햇볕이 쏟아졌다.

-요즘 한국영화는 이경영이 출연하는 작품과 출연하지 않는 작품으로 나뉜다 말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이경영이다, 소가 이경영처럼 일해야 한다’ 이런 말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매우 감사하다.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충무로 노예’다. 나는 굉장히 긴 공백기를 보냈는데 충무로에서 나를 노예처럼 쓴다면 나를 아낀다는 의미다. 다작 출연은 이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인정해주고 불러줬으니 내가 거부할 수 없다. 내년 여름을 기점으로 작품 수를 줄이려고 한다. 자세히 말할 수 없으나 열심히 출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게 모르게 감당해야 할 빚이 좀 많아서다.”

-배우로서 충전할 시간도 필요할 텐데.

“내 일상은 집과 촬영장, 집 앞 족발집에만 집중돼 있다. 삶이 지칠 때 지인들과 족발집을 간다. 난 구석진 포장마차 스타일이다. 1990년대 초반 충무로 활동할 때 친구로 지내던 차승재(전 싸이더스픽처스 대표), 권칠인, 김태균 감독과 내가 출연료 받으면 장충동 족발을 자주 먹었다. 추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질려도 족발집에 가게 된다.“

-다작을 해도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규정지을 수 없는 생김새를 지녀서 그런가? 요즘 시나리오를 정말 잘 쓴다. 나는 그저 시나리오 원형에 가깝게 가려고 애를 많이 쓴다. 내 장점은 빨리 잊는다는 거다.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잘 잊고 다른 걸 하게 된다. 알코올성 치매가 좀 있는 듯도 하고(웃음).”

-술을 자주 많이 마시나?

“배우들이 술을 좋아하는데 수줍음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수줍음이나 낯가림이 좀 줄어드니까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대배우인 송강호조차도 수줍음이 많더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술을 마시다가 5차에서 송강호를 만났다. 다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송강호한테 선배님이라 하지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저 화장실에서 생각 좀 하고 오겠다”고 하더라. 화장실 다녀와서 매우 수줍게 ‘형!’했는데 또 수줍다고 화장실을 또 갔다 왔다. 그러고선 ‘아직 안 되겠습니다, 선배님’이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나?

“내가 사랑하는 동생 김민종이 꼭 술 먹고 출연 수락을 한다. 나는 매번 그렇진 않는다. 전화 통화로 출연 거절을 못해 얼굴 보고 의사를 전달하는데 족발을 함께 먹으면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그래서 간혹 몇몇 영화사들이 ‘저희랑은 족발 안 드시나요’라고 전화한다. 족발 먹으며 이런저런 영화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어 출연 제의를 받아들인다. 힘겹게 영화를 다시 만났을 때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데 다작이 초심을 흩트릴 수 있어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이경영이 후배 배우 변요한(왼쪽 위)과 최근 술자리에서 함께 한 모습. 이경영은 "변요한이 삼촌이라며 내게 종종 연락한다"고 말했다. 이경영 제공

이경영은 충남대 경상대학에 진학했다가 곧바로 그만 두고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방송인) 박미선 등과 학비를 벌려고 찾은” 영화 ‘연산일기’에 중종으로 발탁돼 처음 카메라 앞에 섰고, ‘아다다’(이상 1987)로 공식 데뷔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하얀전쟁’(1992)과 ‘세상 밖으로’(1994) 등을 거치며 충무로 간판이 됐다. 충무로와 여의도를 오가며 주연을 도맡았던 그는 2002년 미성년자 성매매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오랜 칩거에 들어갔다. 드문드문 몇몇 영화에 잠깐 얼굴을 비추다 2010년대 들어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달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가 주최한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이달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소수의견’)을 각각 받으며 새로운 전성기를 열고 있다. 2002년 사건 뒤 만나지 못했던 아들과도 최근 얼굴을 마주했다.

-1990년대 인기 정점을 누렸다.

“원래 배우 될 생각을 못했다. 우연히 카메라 앞에 섰고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출연 뒤 연기를 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후회가 된다. 대학 시절 훌륭한 교수님이 계셨는데도 기본적인 연기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았으니까. 90년대는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이 부족했던 시기다. 송강호 김윤석 설경구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90년대 배우 중 혼자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다작하듯이 그 당시 함께 활동했던 분들의 연기도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외롭기도 하고 그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배우가 다양해야 하는데 한쪽에 너무 몰려있다. 황금촬영상 시상식 때 원로 촬영감독님들이 ‘이놈만 남았어”라고 하시더라. 90년대 배우들의 현주소처럼 들렸다.”

-왜 혼자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은 해봤나.

“그런 언급을 하면 내가 매우 무례해진다. 90년대 활동한 배우들이 죽은 게 아니니까. 나에게 출연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오는 특별한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9년 동안 많이 쉬었으니까, 이제야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

-9년 동안 거의 작품활동 못할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

“내일이 없는 거 같은 시간이었다. 대인기피증에 숨어 지낸 시기였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무래도 컸다. 과연 그 일이 없었을 때 나는 어떻게 됐을까. 지금처럼 많이 부드럽고 세상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보려고 애썼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아마 나는 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축복 같은 시간이었을 수 있다. ‘영화의 숲’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

-복귀한 뒤 출연작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정지영 감독님의 ‘남영동 1985’(2012)가 큰 전환점이 됐다.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뒤풀이 장소에서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원대 복귀를 환영한다’는 말도 해줬다. ‘아 이제 내가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영화를 간절하게 대하고 겸손하게 연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 감독님은 내 은인이자 아버지이다. 내달 촬영에 들어가는 정 감독님의 멜로영화 ‘인연’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한다.”

-13년 만에 아들을 만났다는데.

“지난달 만났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약속 장소에 갔는데 ‘왜 나랑 비슷한 사람이 날 보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신비로웠다. 지금 고등학생인데 내 고교시절이랑 똑 닮았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감사하기도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며 살려고 한다.”

-여러 역할을 해도 욕심나는 배역이 있나?

“당연히 많다. 국내 대표 배우들이 하는 역할은 다 해보고 싶다. ‘암살’의 염석진(이정재)은 정말 입체적인 인물이라 정재한테 촬영하면 내가 네 나이면 염석진과 하와이피스톨 중 서슴지 않고 염석진 택한다고 말했다.”

-‘암살’로 1,000만 영화 출연 배우가 됐다.

“촬영 때문에 ‘암살’ 1,000만 기념 파티에는 못 갔다. 대신 류승완 감독이 초대해 (여름 라이벌 작품인) ‘베테랑’ 1,000만 기념 파티는 갔다. 류 감독이 ‘베테랑’이 1,000만 돌파했을 때 고맙다는 내용의 긴 문자를 보냈다. 류 감독은 내가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 출연할 때 연출부 일원이었다. (사정이 어려워) 잠시 내 수행 매니저를 몇 개월 했다. 감독이 꿈인 친구인데 일일이 매니저 일 시키기 불편해 내 노트북을 주며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하곤 했다. ‘그런 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문자 내용을 보니 눈물이 확 났다.”

-악역을 많이 맡는 편이다.

“‘암살’에서 강인국이 딸 쏘는 장면에서 지인들이 다들 놀랬다고 한다. 나도 그런 악역을 연기하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악역을 연기하며 젊은 친구들에게 동기를 주고 싶다.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나쁜 기성세대를 보면 세상을 좀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나도 심적으로 힘들지만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연기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출연 제의는 없었나?

“박 감독이 차기작 ‘아가씨’ 출연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내년 개봉하는 영화 ‘대배우’에서 박 감독을 모델로 삼은 ‘깐느박’ 역할을 했다. 박 감독이 영화 편집본을 보고 ‘정말 기분 이상하더라’라고 류승완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웃음).”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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