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에 태풍도 거의 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최악의 가뭄’이라며 아우성이다. 댐과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농민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 가을가뭄이 내년 장마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급기야 ‘범정부적 가뭄 장기화 대비’에 나섰다.” 최근 보도가 아니다. 2008년 10월 중순, 신문과 방송이 전했던 가뭄 모습이다. 그 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은 7월 발생한 ‘갈매기’뿐이었고, 봄 여름 가을 강수량은 예년의 절반도 안 되었다.

▦7년 전 당시 전문가들은 ‘2015년 대(大)가뭄’을 경고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가뭄전문가 워크숍에서 “한반도에선 6년, 12년, 38년, 124년 주기로 가뭄이 나타났다. 2015년쯤 이들 주기가 겹치면서 대가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상청도 강수량 예측결과를 근거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한반도에 커다란 가뭄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장기적 대비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단기적 조치조차 실천하지 않았다.

▦올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가을가뭄이 심각하다. 특히 충남지역은 이미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내년 장마철까지는 해갈이 가능한 강수(降水)를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올해는 시작일 뿐, 내년부터 더욱 심각한 가뭄이 향후 수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침묵의 재앙’ 가뭄은 예로부터 국란(國亂)으로 여겨 대응해 왔다. 홍수로 나라가 무너진 예는 드물어도, 가뭄 때문에 국가가 쇠망한 경우는 적지 않다. 비 좀 내리면 해결되겠지 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가뭄이라는 게 홍수와는 달리 뚜렷한 대책이 별로 없다. 있는 물을 필요한 장소와 시기에 맞춰 돌려쓰는 방법이 최선이다. 올 봄 가뭄이 심각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정원과 잔디밭 물주기 제한, 강과 수로에서 물 끌어가기 금지, 지자체 급수량 25% 감소 등을 발표했다. 엄청난 벌금을 매기고 수도요금을 2배로 물렸다. 주지사의 호소에 주민들이 적극 호응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가을가뭄이 더욱 깊어질 모양이다. 정부가 심각성을 깨닫고 단기적 용수(用水)대책은 물론 장기적 통합관리 등을 궁리해야 한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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