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 조지아주 노크로스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트럼프. EPA 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막말을 서슴지 않는 저질 정치인으로 치부하고 있다. 실제 그가 얘기한 몇몇 사례들은 그런 말을 들을 만하다. 미국으로 넘어오는 멕시코인들을 마약범이라거나 흑인들은 게으르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에다 셀 수 없는 여성 비하 발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정책이라고 내세운 것이 멕시코 국경에 담을 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핏 보면 돈키호테 같은 트럼프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초반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자들 중 가장 높은 34%를 획득하고 그 이후 지지율은 약간씩 하락하지만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 코커스 인기도 조사에서도 20%를 상회하면서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대중의 인기를 얻게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인이 평소 가지고 있는 불만을 시원스럽게 씻어 준다는 것이다. 미국사회는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면서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 사항들이 많다. 점증하는 라틴계 인구에 대한 우려, 유대인과 이스라엘 문제, 흑인 문제, 종교적 갈등, 동성연애자 문제 등이 대표적 예이다. 트럼프는 특히 하층 미국인들의 쌓인 감정을 마구 건드리면서 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고 있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오히려 미국인들이 실제 선거에서 이성적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카타르시스 기능과 함께 트럼프는 1970년대 이래 지속적인 소득 감소로 중하위 중산층들의 관심을 끄는 부자에 대한 과세 특히 불로소득에 가까운 펀드관리자들의 지분보유참여권에 대한 증세 등으로 양분화된 미국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단순히 감성적 자극을 하는 허풍선이 정치인이 아니라 나름대로 미국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공화당 노선에서 벗어난 트럼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미 젭 부시를 비롯하여 민주당까지 그의 정책 아이디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는 또한 공화ㆍ민주 양당 구조로 경직화된 미국의 기성정치 구도에 도전하고 있다. 미 공화당은 선거구 조작을 통해 변함 없는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협 없는 파당 정치를 펼쳐왔다. 오바마 정부 아래서도 두 차례의 예산 미통과로 인한 재정위기를 촉발했고 주요 정책에 대해 반대로 일관해 왔다. 트럼프는 이런 기성 정치세력에게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1990년대 초 로스 페로처럼 양당 구도 밖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할 경우 여지 없이 패배하는 것을 알고 있는 트럼프는 공화당으로 들어가 변화의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과 대선에서 성공할 지 여부는 앞으로 그가 기인적 정치 행태에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과 대외 정책에 대한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지 여부 등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미국 사회는 그가 던지는 정책적 과제와 대안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제기하는 미국의 문제를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한국 정치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슈 중심이 아닌 지역주의에 기초하여 굳어져 가는 양당 구도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최근 한국의 양당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한국 정치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생존 전략에만 몰두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야당의 혁신도, 여당의 지역구도를 그대로 둔 국민공천제도 다 자신들 앞가림에 불과하다.

분배 구조의 양극화는 갈수록 많은 국민을 생계 대책조차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통합도 어렵게 하고 있다. 국제경제 사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고, 요동 치는 안보 환경과 어정쩡한 대북관계 등도 불안 요소다.

막혀있는 한국정치에 시원한 카타르시스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한국의 트럼프가 나왔으면 한다. 수 많은 독설과 외설에도 불구하고 기성 정치인들을 농락하면서 압도하는 충만한 끼와 자신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일궈낸 성공에 기반하여 펼치는 트럼프의 카리스마야말로 바로 지금 한국 정치에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