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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노벨상을 대하는 중국의 이중잣대

입력
2015.10.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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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건강을 위한 중의학의 거대한 공헌을 증명한 것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5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여ㆍ85) 중국중의과학원 종신연구원을 치하하며 한 말이다. 투유유는 1972년 개사철쑥과 개똥쑥 등에서 학질(말라리아)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큰 성분을 추출한 공로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1~7일 국경절 연휴 중 전해진 중국의 첫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소식에 전 대륙은 들썩였다.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중국의 영예이자 중국 과학자의 영예”라는 투 교수의 수상 소감도 중국인을 고무시켰지만 한평생을 중의학에 바친 그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박사 학위도 없고 외국으로 유학을 간 적도 없다. 중국 이공학계의 최고 권위자들에게 수여되는 원사(院士)란 호칭도 받지 못했다. 현재 중국의 원사는 1,500명이 넘지만 이 안에 투유유의 이름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 최초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전 중국인이 감격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도 노벨상 수상의 의미를 선전하는 데 바쁘다. 중국 지도부는 나아가 이번 수상이 중국의 종합 국력과 국제 영향력 상승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 동안 중국에서 태어난 뒤 외국으로 이민을 간 화교 출신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투유유는 중국 국적의 대륙 토종 과학자란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중의학을 바탕으로 한 연구 성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중국은 민족적인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이 없는 우리로선 중국의 수상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5년 전 중국의 태도를 떠 올리면 사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중국 국적으로 가장 먼저 노벨상을 받은 이는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ㆍ60)다. 그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화 민족의 영광’인 이 소식을 단 한 줄도 전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감옥에 있었고 지금도 같은 상태다. 2008년12월 중국의 지식인 변호사 언론인 등 303명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08헌장’을 발표했고 중국은 이를 주도한 류사오보를 곧바로 체포했다. 그는 이어 2009년12월 국가 정권 전복 선동죄로 징역 11년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류샤오보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당시 단식 투쟁을 이끈 적도 있다. 중국 당국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상되자 중국 정부는 이를 서방의 내정 간섭이라면서 강력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가족들이 류샤오보를 대신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도 가택 연금과 출국 금지로 원천 봉쇄했다. 반(反)나치즘 운동을 벌인 독일의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가 강제 수용소에 갇혀 1935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5년 전 노벨상 자체를 무시하고 노벨상을 비판하며 사실상 반(反) 노벨상 기치를 내걸었던 중국이 이번엔 그런 노벨상을 받았다며 한껏 고무되어 있다. 노벨상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체제 선전 수단으로까지 삼고 있다. 아무리 봐도 모순이다.

중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앞으로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최초의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계속 감옥에 가둬두고 있는 한 그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노벨문학상과 노벨의학상은 의미가 있지만 노벨평화상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궤변이다. 노벨상을 대하는 중국의 이중 잣대가 해소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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