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드컵 때 러시아 축구팀과 한국팀이 한 조였다. 그때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어느 팀을 응원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 머리 속에서 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애국심을 가졌다면 자기 나라를 응원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둘 다 응원한다는 내 대답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애국심이란 뭘까. 꼭 자기 나라 축구팀을 응원해야 애국심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 때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서 김연아를 응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친구에게서 어떻게 다른 나라 선수를 응원할 수 있느냐, 그렇게 애국심 없이 사느냐는 지적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김연아를 응원하는 것과 애국심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애국심이란 자기 모국, 즉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나라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 나라를 사랑 하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애국심의 대상은 나라지, 사람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애국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애국심을 표현해야 애국심이 있다고 여기는 것도 내게는 의문이다. 인터넷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쉽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통로와 방법이 많아졌다. 인터넷은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정치적인 뉴스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화제에 대해서도 댓글을 통해 열띤 토론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모니터 앞에 앉아 침을 뱉으면서 화끈한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을 애국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기 나라를 위해 말싸움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비 쏟아내듯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 모국을 위한 경제활동, 군 복무,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애국심을 가진 것인지 의심이 든다. 그런 사람들을 러시아에서는 ‘소파 애국자’라고 부른다. 자기 집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나라가 어려워졌을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키보드 워리어’와 같은 개념이다.

한국에 와서 오래 사는 내게 애국심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애국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나라에 살고 자기 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자기 나라에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이민자를 자기 모국을 포기한 배신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나라에 대한 정서와 내 지리적인 위치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문화, 내가 가진 모국어, 내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도시, 이 모든 것들은 뺄 수 없는 나의 한 부분이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에 오래 살고 있는 나는 러시아에 살면서 러시아를 사랑한다고 얼굴 빨개지도록 외치는 사람보다 애국심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러시아 문화를, 러시아어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1억4,000만 인구의 국가를 대표할 자격이 내게는 결코 없지만 나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그건 기쁜 일이다. 이런 노력을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가.

해외에 산다고 애국심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고국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구 선생도 애국심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문화적 또는 가정 사정 등으로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모국을 포기한 것도, 버린 것도 아니다. 모국을 위한 활동은 해외 어디서도 할 수 있다. 애국심이란 굳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렇게 고국을 아끼는, 자기 안에 고이 간직한 마음일 따름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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