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SNS)사람 인터뷰] (18) 대중 철학자 강신주

‘눈(SNS)사람’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페이스북ㆍ트위터ㆍ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소셜 스타’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철학자들이 김수영에 관해 쓴 글을 읽으면 내가 보기엔 거의 사기 수준이다.” 지난 6월 27일, 원로 문학평론가 황현산(70)이 자기 트위터에 쓴 글이다. 복수형을 썼고 특정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누굴 비하했는지에 대한 문학ㆍ철학계 주변의 짐작은 거개 틀림없을 것이다. 강신주(48)다. 무시로 반격했다. “황현산? 누구야.” 모를 리가 없다. 황현산은 유명하다.

대뜸 반말이었다. 거침없었다. 행색도 그랬다. 명색이 학자인 데다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빨갛게 물들여 세운 짧은 머리 모양에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손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중장년 남성의 훈계가 ‘꼰대질’, ‘맨스플레인’ 같은 말로 청년한테 조롱 당하는 ‘서열 알러지’ 시대, 꼰대처럼 뵈기 싫단 거부 의사가 표나게 드러난 차림이었다.

자유와 사랑의 철학자라고? 외려 그는 강박적이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고 연애 감정이 식으면 미련 없이 떠났다. 그렇게 거쳐간 곳들마다 적은 생겨났고 군중 앞에서 펼쳐 뵌 신기한 초식은 폄하되기 일쑤였다. 학계는 그를 보호하긴커녕 되레 헐뜯었다. 독설이 매끈하진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긁혀 생채기가 났다. 외로웠을 거다, 그도.

좁은 강단을 박차고 거리로 나온 이단아에게서 대중은 소크라테스를 본 모양이다. 한때 선후배였던 대학 교수들의 시샘과 비하를 이겨내게 해준 자신감ㆍ강단도 광야에서 얻었을 터. 실용주의 탓에 홀대되다 학교 밖에서 실용성을 증명한 인문학과 그의 운명이 포개진다. 팬과 안티 팬을 고루 거느리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나의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던 저 논쟁적 인물을 지난달 26일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 내 야외 조각공원에서 만났다.

“20대 때 마주친 철학은, 어려웠다. 높은 암벽을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떡해, 이미 봤는데.” 지난달 26일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 내 조각공원에서 만난 대중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을 하기로 마음 먹는 데 힘든 걸 즐기는 기질도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20대 초반 시절 날카로움을 다시 찾기 위해 수리논리학에 도전해 보려 한다”고 그는 밝혔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철학이 필요한 시간… “자유롭게 해주는 게 사랑”

잡학(雜學)이란 일각의 폄훼를 강신주는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지금 그는 영화평론가에 가깝다. 문학과는 3년 전 ‘김수영을 위하여’를 고별작으로 펴내고선 헤어졌다. “알프스에 갔는데 왜 히말라야를 떠올리냐”는 게 그의 반문이다. 낯선 것들을 자기한테 익숙한 논리로 환원했다면 객지에서 주인 행세도 가능했을 터. 소품처럼 쓰지만 그의 무기는 철학이다.

Q 학부(연세대) 전공이 화학공학인데도 대학원(서울대)은 철학과를 택했다. 왜 철학이었나.

A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이 크게 작용했다. 전두환이 물러났는데 국민이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았단 사실은 충격이었다. 국민을 위한다고 한 것들이 그들을 위한 게 아니었고 강북 사람 꿈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강남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돌을 우회해 갈 때 혼자서라도 돌을 치워야 한다고 외치는 게 철학자의 역할이라 여겼다. 힘든 걸 좋아하는 기질도 이유였는데 인문학 중 가장 어려운 게 철학이었다. 날 시험해보고 싶었다.

Q 철학이 뭔가. 인간ㆍ세계의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게 사전 정의다.

A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주는 거다. 대답하기 쉽잖다. 가령 조갑제는 진짜다. 진짜 나쁜 사람이다. 그냥 조심하면 된다. 위험한 건 장하준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다. 언제 변할지 모른다. 비슷한 건 가짜다. 이런 사이비성에 대해 도저하게 날카롭다면 그 이가 철학자인 거다.

Q 시인 김수영의 말을 자주 인용하고 그의 작품 세계와 인문 정신을 다룬 저술까지 남겼다.

A 온몸으로 밀어붙여야 시가 된다. 김수영이 시론에서 했던 말이다. 달려가 부딪쳐야 한다. 살포시 밀면 안 된다. 지금 시는 시가 아니다. 자기니까 쓸 수 있는 글이 시다. 완벽한 정의 아닌가. 온몸으로 쓰는 게 시만은 아닐 거다. 머리 말고 몸으로 부딪치는 게 예술의 기본이고 확신도 몸으로 하는 거다. 이성복 황지우가 김수영을 따라가려 했지만 못 따라갔다.

Q 책을 수십만권 팔고 강연마다 문전성시가 되는 건 철학자한테 드문 일이다. 비결이 있나.

A 책은 연애편지다. 마음을 전하는 거다. 사람들을 이해시킨단 건 정보를 전달하고 설명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한테 가장 친근한 예를 들어 (자기 경험을) 상기하도록 해주는 일이다. 배웠단 느낌 대신 이미 알고 있었단 느낌을 갖게끔 해야 한다. 내 강의에 사람들이 감동할 때 난 존재 이유를 느낀다. 시간 강사 첫날 학생을 모두 깨우겠다고 결심했다.

Q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로 소개되곤 한다.

A 사랑한단 말처럼 버라이어티(다양)한 게 없다. 최악은 소유하려는 사랑이고 최선의 사랑은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거다. 날 만나 자유롭게 된 사람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사랑과 자유는 같은 거다. 못 가게 잡으면 도망가고 자유롭게 놔두면 곁으로 오는 게 사랑이다.

Q ‘힐링’(치유)이 유행하면서 철학ㆍ인문학에 종교 노릇을 기대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A 있다. 색안경 끼고 ‘정신 승리’ 하며 살라 꾀는 게 종교라면 그걸 벗기는 게 철학이다.

강신주가 신봉하는 건 경험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긴 가장 싫다고, 타자를 다 품진 못한다고, 차라리 내 밖 타자를 인정하는 편이 솔직하다고 그가 말하는 이유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상처받지 않을 권리… “난 소크라테스의 후예”

학계에서 강신주는 비주류다. 학부 전공이 철학이 아닌 데다 유학도 거치지 않은 국내파다. 배경부터 강단 주류와 불화할 만한 조건을 갖췄던 그는 아예 상아탑과 맞서는 길을 골랐다. 소신이었든 전략이었든 그게 영리한 선택이 된 건 학내에서 위기에 놓인 인문학이 외려 학교 밖 대중 관심을 끌면서다. 그는 “내가 주류”라며 으쓱댈 수 있는 스타 철학자가 됐다.

Q 철학과 교수들 사이에선 강신주가 공적이 된 지 오래다. 왜 욕먹는 것 같나. 화 안 나나.

A 누가 유명해지는 게 싫은 거다. 내가 떠드는 건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다. 사람을 아껴서다. 외워 떠드는 ‘허당’들은 나와 논쟁해 이길 수 없다.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Q 상담에 철학의 소용이 뭐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철학이 무슨 해결사냔 거다.

A 소크라테스의 ‘대화’나 공자의 ‘논어’도 안 읽고 하는 소리다. 18, 19세기 대학이란 부르주아 제도에 포획된 철학에 왜 머물러야 하는가. 대학이 생긴 뒤부터 상아탑에 갇혔다. 누가 인문학을 죽였는데. 난 철학자들이 살았던 전통 속에 서있다. 그래서 힘이 있는 거다.

Q 상담 태도와 화법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사도마조히즘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칠단 거다.

A 제3자한텐 독설로 들리겠지만 본인에겐 가장 정직한 얘기다. 철학자 역할이 고민 해결은 아니다. 해결 못할 고민은 없다. 직면하려 하지 않았던 비겁함을 정당화하려고 10g에 불과한 고민을 100g으로 과장할 따름이다. 소위 독설의 구실은 100에서 90을 날려 실체를 드러내는 거다. 상대방이 빠진 진흙탕에 뛰어든 게 욕먹을 일인가. 대학 교수들은 못한 일인데.

Q 자기 계발 담론과 다르지 않은 데다 당연하고 비슷한 말을 되풀이할 뿐이란 비판도 있다.

A 사랑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문제다. 하지만 디테일은 변주된다. 그 주변부를 내가 계속 지키고 있는 거다. 자기 계발은 자본에 잘 팔기 위한 자기 상품화를 뜻한다. 결국 노예 계발이다. 난 인간 편이지 자본 편이 아니다. 내가 하란 대로 하면 회사를 관둬야 한다.

Q 구조는 방치하고 개인의 마음가짐 변화만 종용하는 게 강신주의 해결책인 것처럼 보인다.

A 구조를 바꾸는 건 외부에서 온 구원자가 아니다. 구조에 부딪치며 자각한 개인들의 연대다. 구조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결국 개인의 주체적 태도가 중요하단 뜻이다. 구조는 역동적이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론 안 된다. 계속 참여하고 리콜하고 대통령도 폐기 처분하고 해야 한다. 개인은 자유롭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어디에 갇힌지를 안다.

Q 가령 같은 일을 하고도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 건 불합리한 사회가 주는 고통이다.

A 사회는 고통을 증폭시킬 뿐이다. 고통의 근본적 원인은 존재 자체다. 인간은 순진무구하지 않다. 살려면 폭력을 쓸 수밖에. 최소 폭력을 선택하는 게 윤리적인 건 그래서다. 반면 서울대처럼 높은 데 가거나 취업을 하려는 이들은 최대 폭력을 행사하겠단 거고 그걸 조장하는 힘이 자본주의다. 공동체를 자각하는 건 양보할 때다. 경쟁만 하니 그 느낌을 모른다.

Q 사변보다 경험, 보편성보다 개별성, 연역보다 귀납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A 연구실ㆍ대학에서 게으른 이들이 하는 사유가 연역이다. 타인의 경험을 (내 것인 양) 일반화해 전제로 삼는다. 여행 책만 보고 여행 본질 운운하는 사람은 대략 난감이다. 출발은 귀납이다. 모험을 통해 배우는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 물론 모든 경험이 직접적일 순 없다. 책을 읽고 사람 만나는 건 그래서다. 직ㆍ간접 경험을 포개 데이터를 고치고 넓힐 수 있다.

Q 승려 혜민이나 김난도 교수 등의 위안 담론을 어떻게 보나. 내용 없는 뻔한 얘기 아닌가.

A 혜민 같은 이들의 말은 아편적 효과가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한테 아편 먹지 말라 하긴 힘들다. 시대의 부산물이다. 이들을 죽인다고 변하는 건 아니다. 대안 없이 비판하긴 쉽다.

“시냇가와 돌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강이 무너졌어. 그 아이가 혼자 앉아 있어. 내 시내 돌려 달라며. 정말 예쁘고 강력하지 않아?” 상실감을 환기하는 동화 같은 서사가 강력한 생태 운동 도구가 될 수 있단 게 강신주 주장이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감정수업… “타인 고통에 반응할 수 있어야”

Q 해법이 인문학적이든 사회학적이든 시각은 필요할 것 같다. 관심 있는 사회 현안이 있나.

A 노동 개혁이다. 정작 개혁해야 할 건 따로 있다. 자본주의는 자길 상품화하고 타인도 상품으로 보게 한다. 당연한 게 아니다. 공동체의 원리는 사랑인데 자본주의 체제는 경쟁과 반목을 부추긴다. 그렇게 다수를 소수가 지배한다. 문제는 자발적 복종이다. 직장인들한테 강의할 때 감내 그만 하고 사소한 일로 회사 관두는 연습을 하라고 주문하는 이유다(웃음).

Q 감정에 솔직하란 게 ‘감정수업’의 주문이다. 하지만 요즘 현실은 감정 과잉 상태 같다.

A 아니다. 눌렸던 감정이 복귀해 더 크게 표출되고 그게 감정 과잉으로 비치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경쟁이 첨예하고 신분 보장이 안 되다 보니 직장 상사가 준 모멸감을 그 자리에서 분노로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면서 억압된 감정이 전가돼 엉뚱한 데서 터지게 되고 그 결과가 가정 폭력과 약자끼리 이전투구다. 바야흐로 ‘뒤끝 작렬’의 시대인 셈이다.

2013년 11월 출간된 ‘감정수업’은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분류한 인간의 48개 감정을 48권의 소설과 묶어 살핀다. 강신주에 따르면 이등병더러 감정 표현 하라는 불온한 책이다.

Q 그런데도 30만권이나 팔렸다.

A 베스트셀러의 실제 독자는 판매부수의 10% 정도다. 90%는 트렌드라서 산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랬다. 사전처럼 책을 만든 것도 호흡 짧은 독자들에게 먹혔다.

Q 민음사와도 상호 윈윈이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대형 출판사가 독자 늘리기엔 나을 테니.

A 민음사와는 관계를 끊었다.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봤다. 6개월 뒤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며 마케터를 뽑아놓고 약속을 안 지켰다. 직원 수가 100명만 넘어도 출판자본들은 관료화한다.

Q 국가처럼 규모가 커지면 관료주의화 하긴 더 쉬운 반면 부작용은 더 커질 위험이 있겠다.

A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아쉬운 거다. 5,000만명을 애정으로 품어줘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욕 먹는 거고. 통장(統長) 정도 했으면 괜찮았을 거다. 본래 의미가 ‘반응할 수 있음’인 리스판서빌리티(Responsibility)를 그는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감수성의 대상이 타인이어야 하는데 그걸 법으로 오인한 거다. 법에 반응하는 건 불이익을 피하려는 자기애다.

Q 대통령만의 문제일까.

A 윤리성이나 공동체성과 함께 가는 게 타자를 향한 감수성이다. 이게 없는데도 있는 척하는 ‘진보팔이’들도 많다. 대략 난감이다. 예컨대 4대강 사업으로 썩은 물을 보여주는 건 생태 운동이 아니다. 맑은 물을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감수성을 길러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감수성이 커져 꽃을 사랑하게 되면 누가 꽃을 해치려 할 경우 그걸 지키기 위해 싸울 거다.

Q 극우 단체 ‘일베’ 회원들의 혐오 행위가 갈수록 더 기승하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할까.

A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낙오자를 만든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쓰레기통에 넣어 자기가 들어갈 여지를 없애는 게 경쟁사회 논리다. ‘왕따’ 공격에 가담하는 건 생존하기 위해서다.

Q 정치권은 어떻게 평가하나.

A 새누리(당)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조적 결합이 이번 설악산 케이블카 입법으로 단적으로 드러났다. 법 영향을 받지만 참여 못하는 후손들이 소외됐다. 대의민주정의 허구성이다.

“훌륭한 영화는 대사가 필요 없어.” 영화관(觀)을 이야기하는 강신주의 눈빛이 형형하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씨네샹떼… “영화 본질은 제스처 보여주기”

Q 활동이 예전처럼 눈에 띄진 않는다. 영화에 집중하는 걸로 보인다. 책 내고 칼럼도 쓰고.

A 일주일에 영화를 3, 4편 본다. 매주 한 번 하는 ‘씨네루멘’ 강연 준비를 위해서다. 영화사를 빛낸 감독들 대표작을 다룬다. 시작은 인문학적 동기에서다. ‘명량’ 같은 영화를 1,000만명이 봐선 안 된다. 전체주의나 획일화로 가는 거다. 관객들 안목을 높이고 싶었다. 시인 김수영 표현처럼 철학자 꿈은 철학자가 불가능해지는 것, 모두가 철학자가 되는 거다.

Q 근간 책 이름 뜻이 ‘영화예찬’이다. 철학자가 볼 때 특별한 영화의 미덕이 있나. 뭔가.

A 영화의 본질은 제스처 즉 행동이다. 감각적 제스처를 묘사하기 때문에 영화가 강렬한 거다. 좋은 예술은 보여준다. 즉 기표(記標)를 만든다. 구체적이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철학이다. 관객 머릿속 서류함들로 정리가 안 된 걸 개념화해주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유 탓에 감각이 왜곡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해야 한다. 침묵이 보여주기다.

Q 그렇게 관념 틀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영화의 잉여를 붙잡으려 한 이가 들뢰즈 아닌가.

A 들뢰즈한텐 칼이 있다. 칼도 없는 공구 상자만 뒤지다 발표를 끝내는 사이비들관 다르다. 하지만 자기 텍스트를 성곽 즉 지식인 사회 안에 가둬 보호한다. 그게 푸코와 다른 점이다.

Q 영화의 상업성은 예술성 나아가 다양성과 길항하는 듯하다. 1,000만 관객 시대 그늘이다.

A 영화 다양화는 영화관 다양화와 동행한다. 일차적으로 배급사 잘못이다. 쉽고 단순한 영화가 반복되면 영화가 조금만 어려워도 못 읽게 된다. 감독들도 손해다. 말년 임권택 영화 세계의 남루함을 보라. 한국적인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상업 영화만 만들어 온 결과다.

Q 임권택 감독 후반부 영화가 다른 건 몰라도 화면 즉 스펙터클은 훌륭하단 평가가 다수다.

A 포장일 뿐이다. 좋은 영화의 미덕은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단 거다. 거기엔 서사 구조가 응축돼 있다. 배우가 그런 경우도 있다. ‘대부’의 알 파치노다. ‘박쥐’의 김옥빈이 비슷했다. 연기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송강호는 그래서 못하는 거다. 기교가 보이면 안 된다.

Q 다양한 예술 장르와 동서ㆍ신구 철학을 섭렵한 종횡무진 편력이 영화에까지 닿은 셈인데.

A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요람 같다. 문득 좁단 느낌이 들면 나올 때다. ‘감정수업’이 잘 되고 나니 아줌마를 위한 감정수업, 초등학생을 위한 감정수업 따위를 써달란 제안이 출판사로부터 온다. 안 한다. 재미없으면 의무고 그러면 끝난 거다. 슬슬 영화도 재미없다. 올해가 끝 같다. 수리논리학에 끌린다. 절대관념 세계로 돌아가 내 사유의 극한을 알고 싶다.

Q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한 편을 꼽는다면.

A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확대’(Blow-Upㆍ1966)다. 최고다. 공원에서 어떤 사진작가가 풍경을 촬영했는데 확대해보니 시체가 찍힌 거다. 범죄는 발생했다.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필름은 도둑맞고 시체도 사라진다. 빈 자리에 슥 바람이 분다. 작년에 봤는데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곧바로 망연해진 작가 앞으로 팬터마임 배우들이 몰려와 테니스를 친다. 공은 없다. 한데 공이 있는 것처럼 그들이 연기하자 주인공도 흘러온 공을 잡아 던지는 척하고 거기서 영화는 끝난다. 혼자만 아는 진실에 값이 있는가. 그게 감독이 던지는 주제다.

Q 준비 중인 저술이 있나.

A 내년 초에 ‘발랄ㆍ지랄’ 콘셉트의 정치철학 책을 한 권 낼 거다. 마르크스부터 벤야민, 랑시에르까지 대의민주정을 부정하는 진보적 관점을 모았다. 강연을 통해 초고는 완성했다.

Q ‘감정수업’과 후속작 둘 다 장(章)수가 48개다. 화두집은 심지어 480쪽이다. 기획인가.

A 공교로운 거다. 1년 간 매주 연재할 때 휴일 빼고 하면 48개가 딱 맞다. ‘무문관’이란 화두집이 48장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송나라 때 스님이 아셨던 거다. 바로 합장했다(웃음).

강신주의 철학에서 줄곧 대립하는 두 항이 주인과 노예다. “항상 회사보다 내가 커야 해.” 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의 품위”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는 약 30만부가 팔려나간 히트작 ‘감정수업’ 바로 다음에 강신주가 펴낸 책이다. 역설적이고 알쏭달쏭한 선불교 화두 48가지를 담고 있다. “독자 수가 10분의 1 밑으로 줄었다. 정상에서 쑥 내려와버린 셈”이란 게 그의 너스레고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는 평도 있지만, 그의 ‘주인 되기’ 사유는 더 집요해진 듯하다.

Q 당장 매달리고 있거나 매달릴 화두가 있나.

A 화두는 없다. 원할 때 집필 접는 게 꿈이다. 사람을 예뻐하니 더 예뻐지게 하고 싶고 가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깨워주는 일도 할 거다. 무슨 욕심 있겠나, 책 30권을 쓴 저자가.

Q 철학이 뭘 할 수 있을까.

A 철학이 하는 건 치료다. 힐링과는 의미가 다르다. 사람들은 탈선한 기차 같다. 제자리를 못 찾게 하는 사회가 있다. 제가끔 제 삶이 가장 번쩍일 수 있는 제 궤도를 찾아주고 싶다.

Q SNS 상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이 중 하나가 강신주지만 정작 당사자는 활동에 소극적이다.

A 동어 반복 같아도 개개의 사랑은 다 다르다. 마주 보면 침묵도 대화의 연속이지만 SNS에선 단절이다. 글의 문맥을 모르겠다. 소통은 제스처일 뿐이다. 만나면 딴판인 사람일 거다.

Q 철학자로서의 포부 같은 건 없나. 어디까지 가보겠다, 하는.

A 내가 쓴 책이 강신주는 아니다. 재산도 그렇다. 가진 게 날 결정하진 않는다. 그걸 아는 내가 소유물로 가오 잡고 꼰대질 하겠나. 시래기처럼 박사 학위를 우려먹겠단 생각도 없다.

Q 추종 대상도 없겠다(웃음).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이는 어떤가. 품격과 대중성, 다 잡았다.

A 물론 없는데 외롭진 않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가라타니는 훌륭하다. 자기 얘기를 한다. 다른 작품을 안 읽고 어떻게 글을 쓰나. 맞다. 완전히 소화돼 나오는 똥이면 상관없다. 문제는 오바이트(구토)다. 악취가 난다. 난 추앙 받고 싶지 않다. 그걸 원하면 SNS 하겠지. 내 위주 아닌 방송도 안 한다. 다만 김미화 정관용 손석희 김어준이 부탁하면 무조건 간다.

Q 대표적인 오바이트 결과물론 뭐가 있나.

A 내 평가를 공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대부분 글이 그렇게 보이니까 내가 계속 쓰는 거다. 김수영론 중 볼 만했던 건 김상환 선생의 ‘풍자와 해탈(혹은 사랑과 죽음)’뿐이었다.

Q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문 정신이 뭔가.

A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다. 자길 노예 취급하면 남들도 날 그렇게 대하게 마련이다. 이 회사 아니면 못 먹고 살겠단 생각이 들 때가 회사를 관둘 때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이 남자 아니면 죽는단 느낌이 들면 헤어져야 한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어야 노예가 안 된다. 독설ㆍ욕, 나도 힘들다. 일부러 보여주려고 그렇게 사는 거다(웃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당당하게 살라고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디자인

백종호 jongho@hankookilbo.com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ankookilbo.com

퍼블리싱

이태수 dlxotniocu@naver.com

속기 및 보조

정진호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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