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민이론 30주년 맞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근대의 기획은 놀랍게 성공한 동시에 전대미문의 위험사회를 가져왔다"며 "이 위험의 파수꾼 역할을 해낼 시민과 전문가들의 유기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민영 인턴기자 (숙명여대 법학부 4년)

중민(中民)은 중산층과 민중이라는 이질적 정체성을 하나로 용해한 개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에 진입했거나 진입이 확실하지만, 의식과 행동은 건강한 민중성 또는 서민적 정체성으로 구성된 존재. 보수적 성향의 주류 중산층과는 구분되는 개혁적이고 역동적인 행위주체로서의 중산층을 이른다.

80년대 한 젊은 사회학자가 “중민이야말로 민주화를 이끄는 강력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했을 때, 학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중산층이란 미국과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지원 아래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줄기차게 민중을 배제해온 권위의 옹호자이자 수혜자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터였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쟁취에 한 몫 한 넥타이부대의 등장 등 개혁적 중산층의 실천이 현대사 구비에 적잖게 등장하면서 중민이론의 설명력이 입증됐고 학계의 평가는 자연스레 달라졌다. 매 학기 수강생에게 ‘생애사적 보고서’를 제출시키던 별난 조교수에서 학계 원로가 된 한상진(70)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중민이론 30주년을 맞아 관련 학회를 마련하는 한편, 전자책 ‘중민 이론과 한국 사회’를 내놓는 등 중민론 연구 결산작업에 한창이다.

최근 서울 관악구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에서 만난 그는 “중민이 추구하는 탈인습적 가치관이 여전히 한국사회 변화를 선도할 구심점”이라면서도 “현재는 이를 묶어낼 뚜렷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30년 소회가 남다를 텐데.

“유학 후 돌아와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이 하버마스 같은 언술이론, 소통 개념이다. 정치경제학, 유물론을 배격한 건 아니나 인간 행동이 자본에 의해서만 규정될 순 없다고 생각해 첫 학기부터 학생들에게 ‘생애사적 보고서’를 받았다. 사고방식과 실천, 가치지향을 알고자 했다. 진주알 같은 내용이 많아 어렴풋한 중민의 개념을, 시대를 지탱시킬 힘을, 교육자로서의 감흥과 희열을 느꼈다. 85년부터는 전국 생산직노동자, 사무직노동자, 공직자, 언론인 등을 조사했고, 우리 중산층이 간단한 보수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포착해 87년 6월 이후 본격 주장한 게 30년이 됐다.”

-87년과 2002년 중민이론의 위력이 정점에 달했다고 봤는데.

“87년 넥타이부대 등장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나. 당시 화이트칼라 대부분이 민주화를 지지했다. 97년 정권교체 이후 과연 중민이 쇠퇴하지 않고 사회변동의 주체로 작동할 수 있느냐, 일시적 청년기 현상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다. 그게 2002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현상으로 다시 폭발했다. 음지에서, 대의를 위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았던 인물을 침묵 속에서 바라보던 세대가 지원하고 대선 승기를 가져갔다. 정치적 측면의 정점이다. 이후 몰락, 참담한 실패였다. 대거 정치권에 진출한 80년대 운동권 정치인이 급속도로 기득권에 포섭돼 권력화했다.”

-원인이 뭘까.

“지나치게 낙관했다. 시대가 완전히 바뀐 줄 알고 체제가 오래 지속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정치와 운동이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중민으로서 80년대 세대의 주된 정체성은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 아닌가. 이런 부채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판에 들어갔으면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걸 못했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있다. 야당 언어를 보면 아직도 운동권 논리가 푹푹 튀어 나온다.”

-예를 든다면.

“나는 혁신이고 너는 반혁신이라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운동권, 이분법적 논리 아닌가. 우리는 민주화 너희는 독재하는 식.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가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과도한 이념화의 패악이라 본다. 정치를 하려면 좋은 정책을 내놨어야 하고 현장을 자주 가야 할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게 안됐다. 일자리, 복지, 교육문제 등 현실에서 고칠 것이 굉장히 많지 않나. 실사구시를 못했다. 사회를 양분시키는데 군부독재와 현 집권여당만큼이나 야당도 기여했다. 여야가 적대적 공생 관계다. 조사해보면 80년대 세대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가장 싫어하게 됐다.”

서울 관악구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에서 기자와 인터뷰 중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최민영 인턴기자 (숙명여대 법학부4)

-‘민중에 대한 부채’ 정서는 찾기 어려워졌다.

“부채의식이 특히 80년대에 등장한 것은 급속한 산업 성장으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화이트칼라 전문가층, 숙련노동자의 등장 덕분인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스스로 그럴 위치에 있지 않으니까, 누린 것이 없으니까, 부채의식을 느끼거나 남을 배려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중산층 자체가 대폭 줄었다.

“중민이론이 일종의 딜레마에 처해있다. 중산층 감소로 기반이 취약해졌을뿐더러 사회가 극도로 양극화되니 의식 자체가 사회를 이끌어가기 힘든 측면이 있고, 청년세대의 경제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핵심 가치관인 ‘탈인습적 가치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당연시하는 고정관념을 체계적으로 검증하려는 자세로, 중민이 이를 지닌 대표적 존재다. 최근에는 이런 가치관의 관심사가 미시적 차원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처한 난관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가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녀, 세대, 정규직여부 등 이해관계가 더 낱낱이 쪼개지는데.

“생존문제가 심각해 연대하기가 곤란한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탈인습적 가치관이 젊은 세대에게 확산되는 가운데 인간의 자기 성찰 능력은 향상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조건이 팽배해 있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하는 의식 자체가 젊은 세대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잠재력은 남아 있다.”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80년대 중민의 경험에 각인된 도덕적 자원들을 묶어낼,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건이 결여돼있다. 바로 정치다. 우리는 심각한 지도자 위기, 기근을 겪고 있다. 이 리더십의 공백, 취약이 응당 이뤄져야 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중민적 정체성이 확실한 지도자가 등장해야 미래의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본다. 정치가 여야를 막론하고 심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지역이나 이념 지형에서 일정 세력을 규합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분열을 치유하고 산재한 잠재력을 묶어 끌고 갈 리더십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목이 빠지게 이 리더십을 갈구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현 정당구조와 정치가 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국민적 환멸이 갈수록 커진다.”

-앞으로 연구 계획은.

“시민을 정부 우선의 입장을 갖는 국가시민과 시민 우선의 입장을 갖는 공공시민 등으로 구별하는 시민패러다임에 대한 여러 연구가 돼 있다. 이를 심화시키고, 탈인습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어떻게 개인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가운데 공동의 복리를 추구할 것인지, 또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지식정보화 속에서 부딪힌 미증유의 위험사회 속에서 어떻게 제2근대화를 추구할 것인지 등이 연구돼야 한다. 2017년은 87년 6월 항쟁 30주년이자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시기 아닌가. 그걸 향해 반성할 것은 하고 새로운 도약을 향한 논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생각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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