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9

올 추석은 뭔가 달랐다. 요리가 생활 속으로 파고든 뒤 맞은 첫 명절, 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을 순 없었다. 마침 어머니께서 “올 차례상에는 다들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자”고 주문하셨다. 우리 집은 돼지갈비찜과 잡채로 정했다. 마음 같아선 다 내 손으로 뚝딱 만들고 싶었지만 며느리 역할을 모두 빼앗을 순 없어(?) 사이좋게 나눠 맡았다.

“여보, 찜갈비는 다 됐나?” “응, 이제 당신이 잡채 만들어요.”

추석날인 지난 27일 오전 5시. 밤잠을 설치며 돼지갈비찜을 완성한 아내는 내게 주방의 바통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살짝 건드려도 뼈와 살이 분리되는 걸 보니 갈비찜이 제대로 됐다. 맛도 괜찮다. 이제는 내 차례. 찬물에 얼굴 씻고 잠부터 깼다. 그리곤 비누로 손을 뽀득뽀득 15초간 씻었다. 이 정도는 씻어야 손의 병균이 제거된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는 요리하기 전 습관처럼 굳어졌다. 요리의 완성이 설거지라면 요리의 시작은 손씻기랄까.

돼지고기는 파마간참후깨설(파, 마늘, 간장, 참기름, 후추, 깨, 설탕)로 양념하고, 찬물에 헹군 어묵과 버섯, 당근, 햄, 대파를 채썬다. 청양고추와 홍고추도 길게 배를 가르고 숟가락으로 씨를 제거한 후 채썬다. 모든 재료를 당면처럼 길다랗게 써는 것이 잡채의 기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생각 없이 먹기만 했던 사람에게 칼 쥐어주고 썰라면 복장 터지기 십상일 터.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산다, 요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자들.

추석날 아침 우리 부부가 만든 잡채와 돼지갈비찜. 맏며느리 일거리를 다 빼앗을 수 없어 각자 하나씩 만들었다.

아내가 밤새 찬물에 불려놓은 당면을 건져 참기름을 둘러놓는다. 그래야 붇거나 붙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낸다고 어디선가 귀동냥으로 들었다. 프라이팬에 당근과 버섯, 양파 올려 센 불에 볶고, 돼지고기와 햄도 볶는다. 양조간장과 설탕을 2대 1로 섞고 물을 적당량 넣은 후 참기름을 둘러놨던 당면을 넣는다. 그런데 아뿔싸, 양 조절에 실패해 둥글넙적한 프라이팬이 터질 판이다. 젓가락과 주걱으로는 뒤집을 수조차 없었다. 맨손을 동원해 5분쯤 볶자 당면 색깔이 투명해진다. 대파와 고추를 넣고 마무리~.

올 추석 차례는 예년처럼 집에서 지내는 대신 경북 군위에 있는 할머니 산소를 찾아 지냈다. “올해는 절대로 명절음식 많이 안 한다”고 다짐했던 어머니는 부침에 온갖 나물을 차려 놓으신다. 명절만 지나면 남은 음식 처리에 골몰하던 어머니는 해마다 다짐을 거듭했지만 올해도 이웃집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기름 냄새에 결국 두 손 드셨다고 한다.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음복을 하는데 잡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탱탱하던 당면은 불어터진 라면 면발을 연상케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맛있다고 잘 드신다. 16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는 어떠셨을까. 손자가 처음 차려드린 잡채, 면발이 좀 거칠어도 잘 드셨을 것이다. 다만 맏손자가 앞치마 두른 모습을 좋아하셨을 지는 모르겠다.

올 추석에는 아침 일찍 잡채를 만들어 경북 군위에 있는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할매 맛있어요?"

올 추석은 마침 장모님 생신과 겹쳤다. 요리 배운지 반 년이 넘었건만 사위랍시고 처가에서는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던 터지만 생신상에 미역국 한 그릇은 올려야 할 것 같았다. 메뉴는 쉽게 정했지만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들 미역국은 초급 요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가 당일 닥쳐서야 휴대폰 요리앱에서 레시피를 찾았는데, 백인백색이라 할 만큼 제각각이다. 몇 가지 공통점만 머릿속에 입력하고 세세한 레시피는 잊기로 했다. 일단 전복미역국을 만들기로 하고 시장에서 전복부터 장만했다.

오후 5시30분쯤 차로 10분 거리인 처가에 도착하자, 경남 진주에 사는 처제 식구들과 경기도에 사는 처남 가족들이 벌써 와 있었다. 원래 집 가까운 학생이 학교에 지각하는 법이다. “아이고 오늘 사위 미역국을 다 먹어보네.” 장모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주방을 접수해야 하는데,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아내를 주방보조로 앉혔다. 국간장, 소금, 마늘, 큰냄비, 도마, 칼, 밥그릇, 참기름, 들기름, 프라이팬, 믹서기, 쌀뜨물 등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주문했다. 아내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 결국 장모님까지 보조요원으로 나섰다. 민망하게 미역국 한 그릇 만들겠다고 처가에 비상을 건 꼴이었다.

올 추석날 생일을 맞은 장모님을 위해 난생 처음 만들어본 전복미역국.

전복 다듬기부터 쉽지 않았다. 우격다짐 칼질로 전복과 내장을 껍질에서 분리했다. 전복 6마리 중 장인 장모님 몫인 두 마리는 통째로 놔두고, 나머지는 얇게 썬다.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전복을 볶고, 적당히 익은 내장은 믹서기에 갈았다. 큰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볶는다. 들기름이 적당히 배고 미역이 익었다 싶을 무렵 쌀뜨물과 전복, 다진 마늘을 넣고 푹 끓인다. 마지막 간 맞추기는 아내의 입맛을 빌렸다.

큰 양초 6개와 작은 양초 9개가 꽂힌 케이크와 음식들이 차려진 생신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드디어 처가에 요리로 데뷔하는 순간, 그릇에 모양 좋게 담은 미역국을 장모님 앞에 올렸다. “사위 덕분에 전복 미역국을 다 먹어보네.” 사위 듣기 좋으라고 한 말씀 하신다. 다들 미역국 맛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처제가 맛있다고 하니 합격은 한 셈이다.

사위가 요리한다는데 처가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 우리 어머니도 아들 요리하는 것에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지만, 미국에 사는 사위가 요리를 한다니까 고개를 표나게 앞뒤로 끄덕이는 걸 봐도 그렇다. 다들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다.

요리가 생활의 일부가 된 후 난 달라진 세상을 느끼고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미소를 읽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다만 항상 미소를 맛보려면 좀 더 손맛이 익혀야 할 터. jhjun@hankookilbo.com

추석날 생일을 맞은 장모님께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 장모님은 내내 "사위 미역국을 다 먹어보네"라며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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