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들이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마지막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은 영어 ‘reform’ 및 ‘innovation’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를 국내 영자 신문들은 대개 ‘reform committee’라고 번역하고 있다. 일본 근대 최초의 철학 및 사상 번역어 사전인 ‘철학자휘’의 경우 1881년 초판에서는 ‘reformation’을 종교 개혁이라는 의미에서 ‘개화(改化)’라고 번역하고 있고, ‘revolution’을 국가를 흥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혁명’으로, 또 망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전복’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innovation’은 항목이 없다. 같은 책의 1912년 판에서는 ‘innovation’에 대해서는 ‘신설, 쇄신’이라는 번역어가, ‘reformation’에 대해서는 ‘개혁, 혁신, 개정’이, ‘revolution’에 대해서는 ‘혁명, 전복’이 주어져 있다.

중국의 경우, 혁신이란 말을 최초로 쓴 사람은 량치차오(梁啓超ㆍ1873~1929)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02년의 글 ‘근세 문명 창시자 두 대가의 학설(近世文明初祖二大家之學說)’에서 서양 근대 사상과 관련된 번역어를 대량으로 소개하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 종교 궤변 관찰 실험 경험 이론 의식 진리 류오(오류) 원리 등과 같은 말들이 바로 그러하다. 이것들 대부분은 먼저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된 다음에 중국으로 수입되었는데, 1898년의 소위 변법자강운동이 실패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 량치차오는 그 당시 일본에서 번역, 번안된 많은 서양 사상사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02년의 글에서 두 대가라 함은 영국의 베이컨과 프랑스의 데카르트인데, 량치차오는 영국 경험론을 ‘격물파(格物派)’로, 또 대륙의 합리론을 ‘궁리파(窮理派)’로 요약하고 있다. 그 글에서 량치차오가 강조하려고 했던 바는 서양 근대사에서는 학술적 ‘혁신’이 현저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경우 정치, 경제, 사회적 혁신에 앞서는 것이 바로 사상적, 학술적 혁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혁신이란 말 이전에 개혁, 유신, 변혁, 변법과 같은 어휘가 이미 있었는데, 각기 ‘후한서’ ‘시경’ ‘예기 대전’ ‘상군서’에 나온다. 이 어휘들은 조선 시대 조광조의 개혁, 박정희의 10월 유신, 중국의 무술변법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체제 내의 개량 내지는 변화였을 뿐, 체제 자체의 혁명적 변화를 뜻하지는 않았다. 다만 주목할 만한 것은 ‘개량’이란 말이 캉유웨이(康有爲ㆍ1858~1927)의 ‘대동서’에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다.

“천명을 바꾼다”는 의미의 한자어 혁명(革命)은 ‘주역’의 혁(革) 괘에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의 혁명은 그저 왕조의 교체를 뜻하는 것이지, 근대적 의미의 혁명, 즉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정치 권력을 빼앗아서, 사회 및 경제 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집어 엎는다는 의미의 변화는 아니었다. 유럽에서 ‘revolution’은 원래 천체의 회전, 특히 공전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반면에 자전의 경우 ‘rotation’이란 말이 쓰였다.

기술 혁신 및 경영 혁신이란 의미의 ‘innovation’은 ‘novice(초보자)’와 같은 어근을 갖는 말이며, 거슬러 올라가자면, 명사로서 ‘새로 도착한 노예’ 혹은 형용사로서 ‘새로운’ 등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에 비해서 한자어 ‘혁’의 어원적 형태를 놓고 말한다면, 혁신이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고통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신의 ‘설문해자’에서는 혁(革) 자에 대해서 일단,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털을 뽑아 다듬는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파생된 의미로 ‘다시 새롭게 바꾸다’는 뜻을 덧붙여 놓고 있다. 허신은 갑골문과 금문을 보지 못한 채 ‘설문해자’를 지었는데, 혁 자의 금문 형태는 극(克) 자의 변형된 형태에 양 손이 더해진 형상이다.

극 자의 갑골문 형태는 사람이 입을 크게 벌리고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모양새를 나타내고 있는데, 본디 사람을 죽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했다. 극 자에 사람 손이 하나 더해져서 피(皮) 자가 되었고, 두 개가 더해져서 혁 자가 된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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