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오픈 프라이머리 추진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이 시간 이후부터 대표님께서 회의 후에 백블(백브리핑)을 안 하십니다. 기자 분들이 질문을 하셔도 답을 안 하실 겁니다.”

지난 10일 오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성일 상근부대변인을 통해 ‘절필(絶筆)’ 아닌 ‘절답(絶答)선언’을 했습니다. 김 대표에게 현안 관련 질문을 던지기 위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길 기다리던 기자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블을 중단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표가) 힘드신 것 같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앞으로 대표 입장을 듣기 위해 일일이 통화를 해야 하나” “전화는 제때 받아주겠다는 건가”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뒤에서 이야기한다’는 뜻의 비공개 브리핑인 백블에 정치부 기자들이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 기사 소스의 8할은 정치인의 발언입니다. 정치인의 말 한 마디를 중심으로‘돌아가는 판’을 읽고 갖가지 분석과 전망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일정에 쫓기는 의원들이 수백 명에 달하는 국회 출입기자들의 전화를 매번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회의가 끝날 때까지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다가 의원들이 나오면 붙잡고서 회의 내용이나 관련 입장을 듣고 흐름을 파악합니다. 일종의 공동취재인 셈이지요. 기자들이 이 백블을 위해 매일 회의장 밖에서 진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백 브리퍼를 익명 처리하는 다른 출입처와 달리‘백블’이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백블을 한)정치인의 실명을 기사에 그대로 박는 것이 국회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김 대표가 ‘백블 중단 선언’을 한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둘째 사위의 상습 마약 투약 논란이 불거진 아침이었습니다. 때문에 김 대표가 일부러 백블을 회피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질 못했습니다.

김 대표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 후로 1주일이 지난 17일 아침입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과 함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추진하기가 어려워진 만큼 김 대표가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가 왔다”고 발언한 직후였습니다.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오픈프라이머리’가 흔들릴 기미가 보이자 그 의지를 재확인시킬 통로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백블을 활용할 때가 된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날 회의 직후 김 대표는 반신반의하며 대기하는 기자들을 보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자는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에도 윤상현 정무특보, 원유철 원내대표의 ‘김 대표 대선 불가론’, ‘제 3의 길’처럼 김 대표를 흔드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김 대표는 백블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전하는 중입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실현하기 위해 당 대표가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픈프라이머리는 김 대표의 대표적 브랜드입니다. 지난달에는 오픈프라이머리를‘국민공천제’로 바꿔 부르자며 사수 의지를 한 번 더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당 대표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공천 과정에 개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지역에 특정 후보를 내리 꽂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가 이처럼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는‘오픈프라이머리 사수’를 강조하는 것은 김 대표 자신의 지난 ‘두 차례 공천 탈락’이라는 아픈 기억과 더불어 청와대를 향해 내년 공천 과정에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20대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픈프라이머리를 사수하려는 김 대표 측과 이를 흔들려는 세력 간에 파워게임이 슬슬 시작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을 언급했다가 청와대 반발에 곧바로 뜻을 굽히고 지난 7월 청와대 압박에‘순망치한’의 관계였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거부권 정국에서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김 대표가 이번에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백블 중단 선언’을 일주일 만에 스스로 해제하며 오픈프라이머리 사수에 나선 김 대표를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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