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을 걷다(5) '제3의 한옥마을' 익선동

서울의 한옥 마을로 흔히 북촌과 서촌을 꼽는다. 그러나 북촌과 서촌에 이은 서울 제 3의 한옥 마을이 있다. 바로 익선동이다. 동서로는 종묘와 인사동, 남북으로는 종로3가와 창덕궁 사이에 걸쳐 있는 익선동은 많은 사람에게 아직은 그 존재도, 이름도 낯설다. 하지만 이곳은 가로 세로 좁은 골목을 두고 소박한 한옥 100여 채가 남아 있어서 수십 년 전으로 돌아온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고층 건물이 쑥쑥 지어지고 땅값이나 임대료를 올리기 위한 묘수가 난무하는 서울 도심에서 어떻게 이런 상태로 남아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아담하고 소박한 한옥, 줄지어 있는 화분

익선동으로 이어지는 낙원악기상가나 지하철 종로3가역 주변은 자동차와 행인들로 늘 북적거린다. 그 가운데 종로3가역 6번 출구 옆 좁은 길을 통해 익선동으로 들어가면 고깃집이 모여 있다. 광주, 고창, 진주 등 전국 각지의 지명이 다 들어간 고깃집은 테이블과 의자를 가게 앞 골목에 내놓아 사람들을 유혹한다. 오후 다섯 시가 갓 넘은 이른 시각인데도 골목 사이로 비켜 들어온 저녁 햇살을 맞으며 연기를 피우고 갈매기살과 곱창을 굽는 손님이 적지 않다. 폭이 2미터가 채 되지 않은 좁은 길의 앞뒤좌우 고깃집에서 동시에 전해지는 떠들썩한 열기에 길 가는 사람의 걸음이 느려진다.

익선동의 고깃집. 좁은 골목길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아 손님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의 고깃집들을 지나면 비로소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기와를 얹은 작은 한옥, 한옥을 조금 바꾼 예쁜 카페와 공방, 하얀 깃발이 나부끼는 점집, 예쁜 한복을 만드는 옷집. 세탁소 주인이 열심히 다림질을 하고 있는 사이에 골목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낯선 행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골목에 줄지어 나와있는 화분 옆에서는 참새떼가 시끄럽게 지저귄다. 야트막한 한옥 사이 골목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높은 건물들이 동네를 에워싸고 있다.

북촌의 한옥이 크고 세련됐다면 익선동의 한옥은 작고 소박하다. 이런 한옥을 도시형 한옥이라고 한다. 한옥은 한옥이되 표준화해 대량 공급한 한옥이다. 익선동 한옥을 만든 이는 정세권이라는 개발업자다. 1910년대 후반 건양사라는 주택회사를 설립한 정세권은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이곳 익선동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다. 북촌보다 앞선 최초의 한옥 단지였다. 그가 지은 이곳 한옥은 크기가 15평형에서 50평형까지 다양했지만 대부분 규모가 작았다. 그러니 익선동은 처음부터 서민을 위한 공간이었다. 정세권의 익선동 한옥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게 대청마루에 유리 낀 문을 달았고 지붕 끝에 함석 챙으로 빗물 배수구를 만드는 등 전통 한옥과는 많이 달랐다.

익선동의 한옥. 아담하고 소박한 서민형 한옥이다.
익선동의 좁은 골목에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다.

●김유정 사랑 뿌리친 박녹주의 옛집

익선동에는 오래된 집들만큼이나 이야기도 많다. 앞서 언급한 고깃집 골목 부근에는 무형문화재 박녹주(1905~1979)의 옛집이 있다. 경북 선산 출신의 박녹주는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구애를 뿌리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김유정(1908~1937)은 휘문고 3학년이던 1926년 어느 날 종로 공중 목욕탕에서 나오는 박녹주를 보고 반해 넋을 잃고는 ‘녹주, 내 너를 사랑한다’는 혈서를 보내는 등 3년 동안 연서를 써 당시 박녹주가 속해있던 명월관과 그의 집을 찾아 다녔다. 그런 김유정을 보며 박녹주의 남동생은 “누나, 찾아와서 늘 울고 갑니다. 엉엉 울고 있어요.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박녹주는 “내게 영감이 있다”며 세 살 연하 김유정의 구애를 외면했다. 하지만 김유정을 그렇게 뿌리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지 박녹주는 훗날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해 내가 평생 슬하에 자식이 없이 살았나 보오.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 줄 것을…”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명창 박녹주가 살던 집. 아무런 표시가 없어 박녹주의 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박녹주 옛 집을 끼고 왼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길로 추정된다. 사람 두 세 명이 나란히 지나가기에도 좁은 이 길이 고려 때는 하천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익선동 북쪽의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에는 요정 오진암(梧珍庵)이 있었다. 1970, 80년대 대원각, 삼청각과 함께 서울시내 3대 요정에 속했던 오진암은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북한 제2 부수상이 만나 7ㆍ4남북공동성명을 의논한 장소로 유명하다. 안마당에 오동나무가 있어 오진암으로 불렸으며 건축미가 뛰어나 소궁궐이라고도 했다. 오진암의 자재는 인왕산 기슭의 문화공간인 무계원을 짓는데 사용됐다.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벽에 붙은 오진암 자료 글과 사진. 지금은 호텔로 변한 이 곳에 한국 요정 정치의 산실인 오진암이 있었다.
돈녕부가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동판.

호텔 왼쪽의 오피스텔 건물은 돈녕부가 있던 자리다. 조선시대 종친부에 들어갈 수 없는 종친 및 왕의 외척 등과 관련한 사무를 처리하던 관청이 이 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으며 오피스텔 담벼락에 안내 동판만 딸랑 하나 남아 있다.

익선동에는 문인이 살던 집도 있었는데 특히 작가 홍명희(1888~1968)의 집은 팔홍문 집으로 불렸다. 1926년 창간된 월간 별건곤은 홍명희와 그의 형제, 아들, 조카 등 홍씨 문패가 여덟 개나 붙어 있어서 팔홍문 집으로 불렀다고 썼다. 신소설 ‘자유종’의 이해조(1869~1927), 장편 ‘고향’의 이기영(1895~1984),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김억(1896~?) 등이 익선동에서 살았고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 홍사용(1900~1947)도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친구 박진의 익선동 집에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현진건(1900~1943)의 장편 ‘지새는 안개’에서 창섭이 정애에게 쓴 편지의 수신처가 익선동이고 이광수(1892~1950)의 ‘흙’에서는 한민교 선생의 집이 익선동에 있었다. 아쉽게도 홍명희, 이해조, 이기영, 김억이 살던 집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람 찾아오는 익선동, 한옥 마을 보존 중요

서울 도심에 한옥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촌과 서촌 만큼은 아니어도 익선동 한옥과 골목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 카메라와 책자를 든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어찌 알았는지 외국 젊은이들도 잠자리를 이곳에서 구한다. 개성 있는 카페가 들어서고 게스트하우스도 몇 군데 문을 열었다.

익선동에 들어선 작은 가게

때마침 게스트하우스 종로의 나무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더니 주인이 반겨준다. 아담한 마당 한쪽의 작은 마루에 앉아 고개를 들었더니 기와 지붕 사이로 네모 난 하늘이 보인다. 집 구경이나 하자고 들어갔다가 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주인과 한참 동안 집과 동네 이야기를 했다. 집 앞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나무 대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게스트하우스 종로. 어찌 알았는지 일본, 중국 등의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우연히 말을 주고받은 폴란드 사람 파벨(29)씨는 익선동의 차분한 분위기와, 바로 옆 종로3가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며 이 동네가 좋다고 했다. 8월 초에 한국에 왔다는 그는 옷과 얼굴 등을 파랗게 칠한 다음 마네킹처럼 꼼짝하지 않는 길거리 퍼포먼스로 돈도 벌고 여행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익선동은 도심에 있는데다 동네가 낡고 허름해 재개발의 유혹이 많은 곳이다. 실제로 이 지역은 2004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초고층 복합 건물이 들어설 참이었다. 재개발로 피맛골이 사라지자 익선동 한옥은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주민들도 재개발의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그 계획이 보류된 상태다. 미국 출신으로 서울의 도시 문화에 관심이 많은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익선동의 역사적 가치는 북촌의 가회동만큼 중요하다”며 “한옥 중심으로 보존이 돼야 하고 서울시가 보존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항상 이 지역을 넘보고 있는 자본과, 때때로 엇갈리는 주민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익선동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은 한옥 마을의 명맥을 이어가기를 많은 사람이 바라고 있다.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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