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산에 간다. 나이가 들어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어떤 날은 북한산에, 다른 날은 청계산에 간다. 두 산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북한산에선 젊은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 청계산에선 나이가 든 이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지하철 청계산입구역에 내려 원터골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혼자 산행을 온 노인들이 결코 적지 않다.

그래도 산을 찾은 노인들은 아직 건강한 이들이다. 출근 시간이 지난 다음 전철 1호선을 타면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노인들은 1호선을 끝까지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간다고 한다. 2012년 온양온천역 이용의 30% 정도가 노인인구로 알려져 있다. 하루 평균 4,000명 가량이다. 노인들이 산을 찾거나 무료 전철을 타고 교외로 나가는 까닭은 외롭고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화요일에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질에 대한 울적한 자료가 발표됐다.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올해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에서 한국은 96개국 중 60위에 머물렀다. 노인의 소득안정성, 건강상태, 취업 가능성, 사회적 연결 정도 등 13가지 요소들을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일본(8위), 태국(34위), 베트남(41위), 중국(52위)보다 낮은 순위다.

순위를 끌어내린 가장 중요한 요인은 48.5%에 달한 노인 빈곤율이다. 전체 평균인 12.9%보다 높아도 한참 높은 수치다. 지난해 60세 이상의 노인은 전체 인구의 18.5%에 달했지만, 이 비중은 2030년 31.4%, 2050년에는 41.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15년 전이 2000년이었음을 돌아보면, 15년 후인 2030년이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다. 60세 이상의 인구가 10명 중 3명이 넘는 것은 낯설고 노쇠한 사회의 풍경이 될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질을 다룬 통계들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한낱 위로의 수사임을 깨닫게 한다. 고령화 대책이 국가적 의제가 되어 본격적인 정책을 추진한 게 노무현정부였지만,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우울한 것은 일자리를 포함한 노인의 삶의 질이 그렇게 좋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대 수명은 갈수록 높아질 터인데, 인생의 제2막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외롭고 빈곤하며 병들어 살아간다면 선진국이 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모르겠다.

노후 복지를 포함한 고령인구 대책을 정부 정책의 제1순위로 삼자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노인 일자리 부족과 같은 제도적 조건에서 자녀에게 올인 하는 문화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노인 문제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대책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또 정년 연장이 가져온 세대 긴장에서 볼 수 있듯, 노후 대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세대 갈등을 높이지 않을 섬세한 정책적 고려가 요구된다.

인구 통계의 변화는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한 이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다. 개인의 삶이든 국가의 일이든 미래는 열려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인 문제가 안겨줄 사회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구 변동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들은 단기적 처방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노인 문제를 해결할 종합 대책에 대한 이념과 세대와 정권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다수의 노인들이 불행한 나라로 가는 이 길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주 개강을 하기 직전인 월요일에 청계산을 찾았다. 원터골 쉼터에서 진달래 능선으로 내려오는 길, 바로 앞에 한 노인이 유행가를 크게 틀어놓고 걷고 있었다. 구부정한 어깨 너머로 들리는 곡은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였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어느새 아주 조금씩 가을빛이 물들어가는 초록의 진달래 잎사귀들이 늦은 오후의 햇살에 반짝거리는 풍경이 다소 눈물겨웠다면 이제 나도 꺾어진 50대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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